시신경척수염(neuromyelitis optica, NMO)을 전에는 시신경염과 척수염으로 나누어 두 가지 증상이 동시에 발생해야 진단할 수 있었다(2006 Wingerchuk criteria)[
1]. 그러나 NMO-IgG항체 발견 이후 최근에는 보다 넓은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NMO-IgG 양성이면서 시신경염과 척수염 중 한 가지 증상만 나타날 수도 있으며 침범한 부위에 따라 실조증, 사지마비, 복시, 시야장애 같은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이 때문에 시신경척수염범주질환(neuromyelitis optica spectrum disorder, NMOSD)이라는 확장된 개념이 도입되었다[
2]. 이처럼 임상증상이 다양하지만 갑자기 발생한 기억저하가 주 증상인 경우는 드물다. 저자들은 다른 동반증상 없이 갑작스런 기억저하만 나타난 시신경척수염범주질환의 증례가 있어 이를 보고하고자 한다.
증 례
51세 여자환자가 3일 전에 갑자기 발생한 기억력 저하 때문에 기억장애 클리닉에 방문하였다. 증상 발생 하루 전까지도 기억력이나 지남력에 특별한 문제는 전혀 없었다. 일주일 전에 딸과 했던 약속이나 5일 전 조카에게 병문안 갔던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수 시간 전에 아침식사를 했거나 약을 복용한 사실도 떠올리지 못했다. 평소 복용하던 약물이 많이 남았는데 환자는 약을 다 먹었다는 말을 반복하였다. 보호자가 옆에서 계속 상기시켰으나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였다. 또한 본인의 나이, 생일, 배우자의 이름, 집주소 같은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환자는 1년 전 복시, 어지럼, 보행장애로 본원에서 치료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 신경계진찰에서 좌안 눈꺼풀처짐, 좌안 내전장애와 상사시, 오른쪽 혓바닥 감각(general sense) 저하가 있었고 걸을 때 우측으로 넘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뇌 MRI의 액체감쇠역전회복(Fluid-attenuated inversion recovery, FLAIR) 영상에서 수도관주위영역(periaqueductal area)과 우측 뇌교후방(right pontine posterior portion)에서 고신호강도 병변이 보였다. 뇌척수액검사에서 백혈구 5 /mm3, 단백질 52 mg/dL이었고 간접면역형광법(Indirect immunofluorescence)으로 측정한 NMO-IgG 항체는 음성이었다. 당시 뇌간뇌염(Brainstem encephalitis)으로 추정 진단 후 메틸프레드니솔론(methylprednisolone, 1 g/day) 정맥주사를 5일 동안 사용하였고 이후 경구스테로이드로 변경하여 점차 감량하였다. 증상은 서서히 호전되었으며 3개월 후 신경계진찰에서 이전에 있었던 신경계 이상은 나타나지 않았고 이 때 시행한 뇌 MRI검사에서 뇌간 부위의 고신호강도 병변이 사라졌다. 스테로이드는 총 9개월 동안 복용한 후 중단하였다.
환자는 스테로이드를 중단한 지 약 3개월 정도 경과 후 갑자기 기억력 저하가 나타나서 재입원하였다. 1년 전 뇌염 이외 과거력으로 1년 반 전 고혈압을 진단받았다. 두부외상력이나 치매 가족력은 없었으며 최근 병력에서 예방접종력 또는 음주나 영양결핍의 가능성도 없었다. 기억력저하를 일으킬 수 있는 약물복용력은 없었으며 저산소증에 대한 병력도 없었다. 신경계진찰에서 뇌신경, 운동신경, 감각신경 검사에서 국소 또는 편측 신경계결손은 없었고 실조증과 병적반사도 없었다. 한국판간이정신상태검사(K-MMSE)(오른손잡이, 초졸 학력)에서 20점(시간지남력 1점, 장소지남력 5점, 기억등록 3점, 주의집중과 계산 4점, 기억회상 0점, 언어와 시공간구성 7점)이었다. 서울신경심리선별종합검사(Seoul Neuropsychological Screening Battery, SNSB)결과, 임상치매평가척도(clinical dementia rating, CDR) 0.5점, 임상치매평가척도합(CDR-Sum of Box) 3.5점, 치매단계평가척도(Global deterioration scale) 4점이었으며 주의집중력, 언어유창성, 이해력은 유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언어 및 시각 기억력과 이름대기능력, 계산능력에서 뚜렷한 장애가 있었다. 기억력은 즉각회상, 지연회상, 재인능력 모두 저하되었다(
Table).
증상발생 3일 뒤 촬영한 뇌MRI T2강조영상에서는 양측 내측 시상(bilateral medial thalamus), 시상하부, 시신경교차에서 고신호 강도 병변이 보였다(
Fig. 1). T1강조영상과 조영증강영상은 정상이었다. 뇌척수액검사에서 백혈구 7 /mm
3, 단백질 48 mg/dL이었고 뇌파는 정상이었다. 혈청 비타민 B1은 140.1 nmol/L로 정상범위였고, 혈청 신생물딸림항체(Paraneoplastic antibody, Hu, Ro, Ri), 뇌척수액 올리고클론띠(Oligoclonal band), 혈청과 뇌척수액 자가면역뇌염항체(NMDAR, AMPA1, AMPA2, LGI1, CASPR2, GABA-B)검사에서 음성이었다. 그러나 이전과 같이 간접면역형광법으로 시행한 NMO-IgG항체검사는 양성이었다. 시신경척수염범주질환에 의한 급성 인지기능장애로 판단하고 경구스테로이드(prednisolone 60 mg/day) 치료를 시작했으며 6개월에 걸쳐 점진적으로 감량한 뒤 중단하였다. 기억장애 발생 약 3개월 뒤 시행한 추적 뇌MRI T2강조영상에서 양측 시상, 시상하부와 시신경교차 부위에서 병변이 현저히 줄었다(
Fig. 2). 증상발생 1년 4개월 뒤 시행한 MMSE는 26점(시간지남력 5점, 장소지남력 5점, 기억등록 3점, 주의집중과 계산 5점, 기억회상 0점, 언어와 시공간구성 8점)으로 주로 시간지남력이 호전되었다. 증상발생 3개월과 1년 4월 후 시행한 추적 신경심리검사에서 여전히 언어, 시각 기억력이 저하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호전되었고 (
Table), 일상생활 수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고 찰
시신경척수염은 중추신경계에 발생하는 급성 또는 아급성 염증성 탈수초질환이다. 다발경화증(multiple sclerosis)의 아형인지 또는 독립적인 질환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오랜 경험이 축적되면서 임상과 영상특징이 다발경화증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2]. 게다가 자가항체인 NMO-IgG가 발견되어 더 확실해졌다[
3]. 이는 aquaporin-4에 대한 항체로 시신경척수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Aquaporin-4는 중추신경계에 분포하는 수분통로로써 수분과 글루타메이트 항상성에 관여한다. 생체외실험(In vitro study)에서 NMO-IgG가 Aquaporin-4에 결합하면 항체변형(antigenic modulation), 항체내재화(antigen internalization)을 거쳐 용해소체경로(lysosomal pathway)를 거친다고 알려져 있다[
4,
5].
NMO-IgG의 발견은 시신경척수염 진단에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이 때문에 최근 개정된 진단기준(2015 International Panel for Neuromyelitis Optica Diagnosis)에서는 NMO-IgG 양성인 경우와 음성인 경우를 나누어 분류하였다[
2]. NMO-IgG 양성인 경우 6가지 핵심증상(core clinical characteristcis) 중 한 가지 임상증상이 있으면 시신경척수염범주질환으로 진단할 수 있다. 6가지 핵심증상은 시신경염, 급성척수염, 맨아래구역증후군(area postrema syndrome), 급성 뇌간증후군(acute brainstem syndrome), 기면병(Narcolepsy) 또는 사이뇌증후군(diencephalic syndrome)과 함께 시신경척수염에 부합하는 사이뇌 MRI 병변(제3뇌실과 수도관주위병변), 증상성 뇌증후군과 시신경척수염에 부합하는 뇌 병변이 이에 해당한다[
2,
6].
본 증례의 경우 기억력 저하가 발생하기 1년 전 첫 증상으로 좌안 눈꺼풀처짐과 외안근 마비가 발생하였다. 이는 급성 뇌간증후군(acute brainstem syndrome)으로 뇌MRI에서도 수도관주위 영역의 교뇌와 중뇌에 고신호강도 병변이 보였다. 1년 뒤 기억력 저하로 재입원했을 때도 뇌MRI FLAIR영상에서 양측 시상내측(medial thalamic lesion), 시상하부와 시신경교차 부위 같은 뇌실막주변(periependymal)에 특징적인 고신호강도의 병변이 있었다. 본 환자에서는 2차례 입원했을 때 각각 특징적인 임상증상과 뇌MRI 이상 그리고 1차례 NMO-IgG 양성이 확인되어 시신경척수염범주질환으로 진단하였다. 처음 병원에 왔을 때 시행한 NMO-IgG 혈청검사가 음성으로 나왔던 것은 민감도가 다소 낮기 때문으로 보인다. 보고에 따라 다르지만 간접면역형광법에서 민감도는 54-73%, 특이도는 91-100%로 알려져 있다[
7]. 상대적으로 낮은 민감도때문에 항체음성일 경우 반복검사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시신경척수염범주질환에서 뇌염증상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본 증례와 같이 제3뇌실과 수도관주위, 즉 사이뇌 병변(시상, 시상하부, 전방중뇌)일 경우 항이뇨호르몬분비이상증후군(syndrome of inappropriate antidiuretic hormone), 저혈압, 비만, 무월경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2]. 뇌경색, 티아민 결핍(thiamine deficiency) 같은 다른 원인에 의한 사이뇌 증후군에서 시상의 등안쪽핵(dorsomedial nucleus)이 침범된 경우 기억력 저하가 발생한 것은 이전에도 보고된 적이 있으며[
8,
9] 본 증례도 이 부위의 병변으로 인해 기억력 저하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병변을 침범한 다른 시신경척수염범주질환에서 갑자기 발생한 기억력저하가 주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며 보고된 예가 많지 않다. 아직 국내에서 보고된 적은 없으며 해외에서 보고된 한 환자는 기억장애뿐 아니라 저체온증, 서맥이 같이 동반되었다[
10]. 하지만 다른 동반증상 없이 갑작스런 기억저하만으로 나타난 시신경척수염범주 질환에 대한 보고는 드문 것으로 보인다. 사이뇌 병변임에도 시신경척수염범주질환에서 기억력 저하가 잘 나타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향후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본 증례는 갑자기 발생한 기억력 저하의 감별질환으로 뇌졸중이나 베르니케뇌병증, 저산소성뇌병증 뿐만 아니라 시신경척수염범주질환도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본 증례와 같이 스테로이드 치료를 함으로써 예후를 개선시킬 수 있으므로 보다 세밀한 병력청취와 신경계진찰을 통하여 조기에 진단하고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