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조는 여러 원인질환에 의해 발생할 수 있으며, 서서히 진행되는 만성실조의 경우 유전질환과 퇴행질환을 비롯한 기타 요인으로 나뉠 수 있다. 유전실조증은 척수소뇌실조(spinocerebellar ataxia, SCA)가 가장 흔한 원인이며, 그 외의 많은 우성 및 열성 유전실조질환들이 있다[1]. 그러나 임상 표현형(clinical phenotype)이 여러 유전질환에서 중복되어 나올 수도 있고, 같은 유전질환이라도 임상표현이 다양하여 임상 증상만으로는 정확한 진단 접근이 어렵다. 차세대염기서열분석(next generation sequencing, NGS)은 기존의 생어염기서열분석(Sanger sequencing)의 모세관전기영동기술에서 벗어나 유전체를 많은 조각으로 나눈 후 염기서열을 조합하여 대규모 병렬형염기서열을 분석하는 방법으로 기존의 방법에 비해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인 기술이다. 이러한 효율성으로 임상에서의 수요와 함께 연구개발과 상업적 회사들의 협업으로 NGS 플랫폼들이 개발되어 상용화되고 있으며, 이를 이용하여 임상에서 상당히 많은 유전질환들의 진단되고 있다[2]. 저자들은 한 질환에서 다양한 증상으로 발현되는 특징으로 진단이 지연되었다가 가족력을 통한 유전자검사로 확진한 OPA1유전자 돌연변이 환자 가족을 경험하여 이를 보고하고 고찰해 보고자 한다.
증 례
1. 증례 1
31세 남자가 10년 전부터 시작된 시력 저하로 안과에 내원하여 양쪽 눈의 시야결손 및 시신경 손상이 확인되어 신경과로 왔다. 안과에서 시행한 시야검사에서 시야장애가 확인되었으며, 안저검사에서 양측 시신경의 중등도 이상의 위축이 확인되었다(Fig. 1). 뇌질환 감별을 위해 신경과에서 신경계 검사 및 진찰을 하였다. 시야검사에서 반측 코반맹(binasal hemianopsia)이 확인되었으며 안구운동검사나 동공반사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그 외 뇌신경검사를 포함한 신경계진찰 에서 이상 소견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보행도 정상적이었고 일자보행도 잘 수행하였다. 다발경화증이나 시신경척수염과 같은 탈수초질환 감별을 위해 뇌 자기공명영상을 시행하였고 이상소견은 확인되지 않아 신경계상태에 대해 추적하며 경과를 보았다.
2. 증례 2
55세 여자가 2주 전부터 진행하는 보행장애로 신경과 외래에 왔다. 환자는 심부전, 당뇨병으로 경구약을 복용하고 있었으며, 병력으로는 이전부터 양안 시력 저하가 있어 안과 진료 후 백내장 및 녹내장을 진단 후 치료 중이었다. 신경계진찰에서 의식은 명료하였고, 안구운동범위의 제한은 없었다. 신속보기(saccade) 및 따라보기(pursuit)는 정상이었으며 자발안진 및 주시유발안진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 외 다른 뇌신경검사에서도 뚜렷한 이상 소견은 없었다. 양측 사지근력 및 감각은 모두 정상이었으며, 손가락맞대기검사, 발꿈치정강이검사 및 빠른교대운동은 비교적 잘 수행하였다. 보행 시 실조보행이 보였으며 일자보행은 수행하지 못하였고, 롬베르크검사는 음성이었다.
혈액검사에서 당화혈색소가 6.7로 증가한 것 외에 일반혈액검사, 간기능검사, 전해질 및 신장기능검사 등은 모두 정상이었고 갑상샘호르몬도 정상 범위였다. 비타민B12, 엽산 수치도 정상이었으며, 신생물딸림항체도 모두 음성으로 확인되었다. 뇌, 경추, 흉추 및 요추자기공명영상에서 이상 소견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감각신경전도검사에서 양쪽 장딴지신경과 얕은 종아리신경의 진폭이 감소되어 있어 경미한 말초신경장애로 진단할 수 있었다. 타 병원에서 치료 중인 안과 증상에 대해 본원 안과진찰 결과, 녹내장 소견이 보였으나 시신경 자체의 이상 소견은 없었다.
보행장애에 대한 자세한 가족력의 병력 청취를 하였으며, 환자는 2남 2녀 중 첫째로 형제 중 실조를 보이는 사람은 없었으나, 환자의 아버지가 40대경부터 걸을 때마다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걸었다고 하였다. 환자의 큰아버지 및 작은아버지 그리고 그의 자녀들 역시 보행장애 병력 및 이로 인한 낙상이 반복되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Fig. 2).
이에 우성 유전실조증의 가능성을 의심하여 SCA1, SCA2, SCA3, SCA6, SCA7, SCA8, SCA17 및 치아적핵창백핵루이체위축증(dentatorubropallidoluysian atrophy)에 대한 유전자검사를 시행하였고 모두 음성으로 확인되었다.
유전실조증을 의심할 전형적인 임상 증상을 보이지 않았으나, 뚜렷한 우성 유전양상의 보행장애의 가족력이 있어 유전실조증 또는 강직하반신불완전마비(spastic paraplegia)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환자에게서 근육의 강직이나 항진된 심부건반사 등 강직하반신불완전마비에 합당한 소견은 보이지 않았고, 소뇌실조증과도 완전히 부합하지 않았으나, 유전실조증의 경우 뚜렷한 실조 증상 없이도 진단될 수 있어 소뇌실조와 연관된 유전자 패널의 NGS검사를 시행하였다. 검사 결과 OPA1유전자의 NM_015560.2:c.1334G>A (p.Arg445His) 변이가 이형접합체로 검출되었다. OPA1 변이에 의한 실조는 시신경위축과 함께 실조가 동반되는 질환으로, 초기에 문진하지 않았던 시력 저하에 대한 가족력을 자세히 물어보았다. 시신경장애위축 병력을 청취하면서 각각 다른 시기에 본원에 내원하였던 증례 1의 환자와 모자 사이임을 확인하였고 증례 1의 환자에게 다시 NGS검사를 시행하여 같은 OPA1 변이를 확인하였다. 남자 형제 중 10대 중반부터 시력 저하가 있었던 동생이 있으며, 사촌 형제 중에서도 청력 저하 등을 보이는 사람들이 각 3명, 2명으로 확인되었다.
고 찰
OPA1 유전자 돌연변이는 우성 유전시신경병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로 주로 시신경위축 소견이 특징적으로 보고되었다[3]. 그러나 시신경 증 상 외에 실조보행, 외안근마비, 청력 저하 등의 신경계증상을 20%에서 동반할 수 있어, 이를 autosomal dominant optic atrophy (ADOA) plus syndrome이라고 명명한다[4,5].
OPA1유전자는 염색체 3q28-q29에 위치하며, 일반적으로 OPA1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OPA1단백질의 생성이 감소된다. OPA1단백질은 미토콘드리아 내막의 융합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단백질로 미토콘드리아 기능부전이 발생하여 이로 인해 망막신경세포를 비롯한 시신경의 손상과 신경계증상이 나오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6,7]. OPA1 변이는 유전변이와 임상 증상의 표현형이 다양하여(phenotypic variability), 동일 가족 내에서도 같은 유전변이를 가지고 있음에도 다양한 임상 양상이 발현될 수 있다. OPA1유전자 돌연변이에서 신경계증상과 관련된 선행 연구를 고찰하면, OPA1유전자 변이가 있으면서 ADOA plus syndrome을 보였던 환자들 중 c.1334G>A 돌연변이가 확인된 환자는 30여 명 정도 보고되고 있다. 시신경위축과 동반된 신경계증상들을 살펴보면 청력저하 29명, 안근마비 12명, 운동실조 4명, 근육병증 2명, 신경병증 1명이 확인되었고 편두통, 유전강직하반신마비, 다발경화증의 증상 등이 있었다[4].
본 증례에서는 특징적으로 증례 2 환자는 시신경의 위축 없이 순수한 보행실조만, 증례 1 환자는 신경계증상 없이 시신경 위축으로만 발현되었다. 이러한 한 가계도 내의 증상의 다양성으로 처음 아들이 병원을 내원하였을 때, 직계 가족 중 유사한 증상을 가진 가족력이 없어 유전질환에 대한 고려가 어려웠으나, 차후 어머니의 진단으로 OPA1유전자 변이를 확진할 수 있었다. 병력 청취를 통해 얻은 다른 가족들에 대해 OPA1유전자검사를 시행하지는 못하였으나, OPA1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하여 다양한 표현형으로 나타난 ADOA plus syndrome으로 판단된다. 또 증례 2의 경우 비록 시신경위축이 보이지는 않았으나 이전의 보고에서도 OPA1유전자 돌연변이 시 시신경위축 없이 신경계증상만 발현된 보고들이 있었고, 증례 2의 가족들과 아들이 전형적인 OPA1유전자 돌연변이 증상과 부합하여 증례 2의 실조 보행은 OPA1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한 것이라고 저자들은 판단하였다.
증례 2 환자의 신경전도검사에서 확인된 신경병증에 대해서는 당뇨신경병증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나, 실조의 정도와 다른 가족과 비슷한 증상임을 고려하면 OPA1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한 증상으로 보인다. 증례 1 환자는 다른 신경계증상 없이 우성 시신경위축 소견만 보여 추후 이전의 보고와 같이 시신경 위축 후에 청력 저하, 안근마비, 운동실조, 근육 또는 신경병증 등의 전신 증상이 발현하는지 추적관찰이 필요하다[4].
임상에서는 유전소뇌실조의 원인질환에 대해 평가 시에 일차적으로 가장 많은 빈도인 SCA에 대한 평가를 일반적으로 시행하는데, 진단이 되지 않을 경우 동반 증상마저 없다면, 실제 임상에서 진단검사를 NGS에 의존하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NGS가 기존의 생어염기서열분석에 비해 정확성이 떨어지고 실조에서 가장 많은 원인이 되는 삼핵산반복(trinucleotide repeat)은 검사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또 증상이 없는 아버지나 증상이 발현된 형제들에 대한 유전자검사 결과가 확인되지 않은 것이 본 증례의 한계점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유전자검사 소견과 임상 양상, 문헌 고찰을 종합하여 볼 때 OPA1유전자 돌연변이에 합당하다고 판단되어 보고하는 바이다. 본 증례를 통해 실조보행 환자의 진단 접근에 있어 신경계증상 외의 가족력에 대해서도 자세한 문진이 중요함을 상기시켜 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