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B12 결핍은 혈액, 위장관, 신경계에 다양한 증상을 유발한다. 신경계증상은 혈액징후보다 먼저 나타날 수 있으며, 척수를 가장 흔하게 침범하며, 그 외에도 시신경, 뇌 그리고 말초신경에도 이상을 초래한다[1]. 신경계증상으로 가장 먼저 손발의 저림, 따끔거리는 느낌, 모호한 감각 증상을 호소하고, 진행하면 보행실조가 생기고, 더 진행하면 경직하반신마비가 나타난다[2]. 저자들은 감각 증상, 보행실조 없이 서서히 악화되는 서동증과 보행장애의 파킨슨 유사 증상을 보인 환자에서 비타민B12 결핍을 확인하였고, 비타민B12를 투여 후 증상이 모두 호전된 증례를 경험하였기에 보고하는 바이다.
증 례
61세 남자가 내원 2일 전부터 악화된 말 어눌함과 보행장애를 주소로 내원하였다. 10년 전에 본원에서 도관경유열린 동맥관폐쇄술(transcatheter closure of patent ductus arteriosus)을 시행받은 것 외에는 특이병력은 없었고, 현재 복용 중인 약물도 없었다. 1년 전부터 미각, 6개월 전부터 후각이 소실되었다고 하였고, 5개월 전부터 말이 어눌해져서 3차 병원 이비인후과에서 진료하였으나 특이 소견이 없다고 들었다고 하였다. 1달 전부터는 반응도 느리고, 걸음걸이도 느려지고, 자세도 구부정해 보인다고 하였다.
내원 당시 혈압 113/65 mmHg, 맥박 80회/분으로 안정적이었다. 신경계진찰에서 의식은 명료하였고, 지남력을 비롯한 인지기능장애는 뚜렷하지 않았다. 뇌신경검사에서 안구운동의 제한은 없었으며, 주시유발안진도 관찰되지 않았고, 구음장애만 관찰되었다. 심부건반사는 정상이었고, 감각이상은 관찰되지 않았으며 롬베르크검사(Romberg test)는 음성이었다. 양측 상하지에 뚜렷한 운동완만(bradykinesia)이 관찰되었으나 근력이상과 경축은 보이지 않았고 실조증도 관찰되지 않았다. 안정떨림과 체위떨림은 관찰되지 않았고, 가면얼굴도 관찰되지 않았다. 그러나 보행 시 걸음거리(stride length)가 감소되어 종종걸음 양상이 관찰되었고, 양팔의 움직임은 감소되어 있었으며, 구부정한 자세로 보행 속도가 현저히 저하되어 있었다. 파킨슨 의심 증상에 대해 시행한 통합파킨슨척도(Unified Parkinson’s Disease Rating Scale)의 Part III 점수는 12점(언어 1점, 손 펴기와 손의 빠른 반복행동이 양측 각 1점씩, 의자에서 일어나기 1점, 자세, 보행, 및 운동 완서가 각각 2점)이었으며, 호엔야 척도 2단계에 해당하였다.
혈관성파킨슨병, 진행성핵상마비 등을 포함한 이차파킨슨증에 대한 평가를 위하여 뇌자기공명영상검사 및 혈액검사 등을 진행하였다. 뇌자기공명영상에서 경미한 백질변성이 관찰되었으나(Fig. A) 뇌경색 등은 관찰되지 않았고, 중뇌대뇌교비율(midbrain to pons ratio)은 69.48로 정상 범위였다(Fig. B) [3]. 혈액검사에서 백혈구 4,030/mm3 (호중구 48.0%, 림프구 42.0%), 적혈구 2.06 g/dL, 혈소판 102,000/mm3, 혈색소 평균 농도 8.9 g/dL, 적혈구용적률 24.7%, 평균적혈구용적 119.9 fL, 적혈구평균혈색소량 43.2 pg이었다. 거대적혈모구빈혈 및 혈소판 감소의 원인에 대한 검사에서 철분 120 μg/dL, 총철결합능 262 μg/dL 및 페리틴 109.0 ng/mL로 정상이었으나 비타민B12와 엽산은 각각 <100 pg/mL(197-771 pg/mL)와 17.9 ng/mL (4.2-19.8 ng/mL)로, 비타민B12가 감소되어 있었다. 호모시스테인(homocysteine) 농도와 메틸말론산 농도는 각각 93.0 μmol/L (7.0-20.0 μmol/L), 16.20 μmol/L (< 0.40 μ mol/L)로 모두 증가되어 있었다. 비타민B1과 비타민B6 중 피리독신은 각각 1.6 μg/L (2.0-7.2 μg/L)와 2.8 μg/L (6.0-40.0 μg/L)로 모두 저하되어 있었다. 말초혈액도말검사에서 대적혈구(macrocyte)와 다염색적혈구증가증(polychromasia)이 보여 거대적혈모구빈혈(megaloblastic anemia) 소견을 보였다. 그 외 일반화학, 매독, 혈액응고장애, 자가면역질환에 대한 검사는 모두 정상이었다.
대장내시경검사에서 이상 소견은 관찰되지 않았고, 생검 조직병리 소견에서도 특이 소견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종합하여 비타민B12, 비타민B1 및 비타민B6 부족에 따른 거대적혈모구빈혈로 진단하였다.
치료를 위해 매일 비타민B12 1 mg 근주 및 비타민B1 250 mg 주사를 1주일간 시행하였고, 이후 매일 비타민B1 300 mg, 비타민B6 100 mg을 지속적으로 경구 투여할 수 있게 하였다. 5일 후 환자의 혈액은 백혈구 4,550 /mm3 (호중구 47.0%, 림프구 39.0%), 적혈구 2.53 g/dL, 혈소판 104,000/mm3, 비타민B12 >2,000 pg/mL, 호모시스테인 19.2 μmol/L, 메틸말론산 0.24 μmol/L로 호전되었다.
1주일 후 환자의 증상은 완전히 호전되었다. 구음장애는 관찰되지 않았으며, 뚜렷한 양측 상하지에 운동완만 또한 호전되었다. 통합파킨슨척도의 Part III 점수는 0점으로, 걸음거리가 증가되면서 보행 속도도 증가되어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관찰되지 않는 상태로 외래 추적관찰 중이다.
고 찰
비타민B12 결핍 환자의 추체외로 증상의 병태생리는 명확하지 않으며 여러 가설이 제시되고 있다. 첫 번째 가설은 비타민B12의 결핍이 호모시스 테인을 통하여 도파민 경로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이다. 비타민B12, 비타민B6 및 엽산은 호모시스테인을 분해하여 신체에 필요한 다른 화학 물질을 생성하는데, 비타민B12가 결핍이 되면 호모시스테인이 고농도로 유지되어 중뇌의 도파민뉴런에 독성을 미친다[4]. 또한 비타민B12의 결핍은 기저전뇌영역(basal forebrain)에서 대뇌각교뇌피개핵(pedunculopontine tegmental nucleus), 선조체(striatum)로 이어지는 네트워크의 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농도를 저하시켜 파킨슨 증상을 일으킨다고 생각된다[5].
두 번째 가설은 탈수초화(demyelination)에 의해 추체 외로 증상이 나타난다는 가설이다. 비타민B12는 메티오닌(methionine) 합성에 보조 효소로 작용하여 호모시스테인이 메티오닌으로 변환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메티오닌은 신경 세포의 수초를 만드는 데 중요하다. 비타민B12는 메틸말론산 CoA (methylmalonyl CoA)가 석신산CoA (succinyl CoA)로 전환되는 과정에도 관여하여, 비타민B12 결핍 시에 메틸말론산과 프로피온산(propionic acid)이 축적되면서 비생리지방산이 만들어진다. 결과적으로 비타민B12가 결핍되면 메티오닌이 부족하게 되고, 축적된 비생리지방산이 수초 속으로 끼어들어가 백질변성을 유발하는 탈수초화가 진행된다. 그 결과 신경계증상을 유발하게 된다 [6].
마지막 가설은 말초신경병증 가설이다. 증가된 메틸말론산과 호모시스테인은 함께 수초를 손상시키면서 결과적으로 축삭을 손상시켜 말초 및 자율신경병증을 유발하여 파킨슨병의 특성을 가진 보행장애를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 [7].
본 증례의 환자는 서서히 진행하는 보행장애를 호소하였다. 운동완만과 구음장애, 좁은 보폭의 걸음, 양팔 움직임의 감소 및 구부정한 자세의 보행장애가 관찰되어 파킨슨병의 특성을 가진 보행장애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안정떨림이나 경축이 동반되지 않았다는 점, 양측에 증상이 있었다는 점에서 퇴행질환인 파킨슨병보다는 이차파킨슨증을 의심하였다. 파킨슨병 의심 증상의 원인으로 감염, 독성, 도파민수용체차단제를 비롯한 약물, 뇌종양, 갑상샘기능저하증, 부갑상샘기능저하증, 만성간부전과 같은 대사질환, 정상압수두증의 퇴행뇌질환 및 뇌경색 등의 혈관성질환 등이 알려져 있다. 환자의 경우, 빈혈의 특징적인 소견인 허약감, 피로감, 운동시 호흡곤란 등은 관찰되지 않았으므로, 대사질환 중 빈혈은 의심하지 않았다. 특히, 보행장애가 주로 관찰되었고 약물 복용력도 없었으므로 혈관성파킨슨병에 대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상태였다. 그러나 일반 혈액검사에서 빈혈이 관찰되었고, 빈혈에 대한 추가 검사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비타민B12 결핍에 의한 거대적혈모구 빈혈이 진단되었다. 그리고 비타민B12 결핍에 대한 치료 1주일 후 환자의 운동완만, 구음장애 및 보행장애는 호전되었다.
최근 비타민B12의 수치와 파킨슨병 중 보행 능력과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다. 낮은 비타민B12 농도는 보행 능력의 더 큰 감소를 예측하였으며[8], 진행된 파킨슨병 환자들에게서는 대부분 비타민B12의 농도가 낮았으며, 초기 파킨슨병 환자에서 비타민B12 농도가 낮은 경우는 파킨슨병의 악화의 예측인자로 볼 수 있었다[5]. 또한 비타민B12 결핍은 혈액검사에서 빈혈 소견 없이도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 비타민B12 수치는 결핍이 있는 환자에서도, 검사 시 혈중 농도는 실험실 기준 범위의 하한보다 높을 수 있으므로, 신경계이상이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경우는 이에 대한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호모시스테인 또는 메틸말론산, 혹은 둘 다를 측정하여 비타민B12 결핍을 배제해야 한다[9]. 신경 조직은 생리적 변화에 매우 민감하므로 미량의 비타민 결핍도 중추 및 말초신경계의 기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본 증례는 서서히 진행하는 보행장애 및 운동완만, 구음장애의 이차파킨슨증이 관찰된 환자에서 비타민B12 결핍이 원인으로 진단되어 치료 후 증상이 호전된 드문 증례로, 진행성 보행장애가 주로 나타나는 파킨슨병을 가진 환자에게서는 비타민B12, 호모시스테인 및 메틸말론산검사를 진행하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