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일요일 오전 이경민 교수님이 미국에서 타계하셨다는 갑작스런 소식은 저를 잠시 동안 얼어 붙고 아무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언제나 소년 같은 미소를 보이는 교수님의 얼굴이 잠시 뇌리를 스쳐갔습니다. 저의 머리 속에 이경민 교수님에 대한 첫 기억은 신경과 전공의를 하겠다고 교수님께 인사를 드리러 방에서 뵈었을 때입니다. 반갑게 맞아주시며 열심히 해보라고 말씀은 하셨지만 미국에서 오랜 기간 계시다 서울대학교병원에 부임하신지 얼마 되지 않으셔서 일 수도 있겠고, 저에게는 학문적으로 너무 높이 계신 분으로 생각되어서인지 저는 관조적이며 냉철한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그로부터 저의 수련기간과 교수생활 동안 교수님을 가까이 지켜본 그리고 언제나 교수님의 연구자세를 따라가고자 노력했던 저로서 교수님의 추모기를 쓰게 되어 매우 영광이며, 잠시나마 다시 이경민 교수님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이경민 교수님은 1963년 4월 20일 광주에서 출생해서, 1981년 서울대학교 의예과에 수석으로 입학하셨습니다. 1987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도미해서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MIT)의 뇌인지과학과(Department of Brain and Cognitive Sciences)에서 Peter H. Schiller 교수의 지도 아래 1992년에 신경과학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코넬대학병원(The New York Hospital-Cornell Medical Center) 신경과에서 전공의 과정을 수료하고, 이후 1997년까지 코넬의과대학 및 Memorial Sloan-Kettering Cancer Center에서 행동신경학/기능신경영상(Behavioral Neurology/Functional Neuroimaging) 펠로우십을 하셨습니다. 1997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서울대학교 병원에 조교수로 귀국해서, 2002년 부교수, 2008년 이후 교수로 재직하셨습니다. 이경민 교수님은 ‘Science’, ‘Nature’ 등 국제학술지에 모두 73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6명의 석박사를 포함하여 모두 138명의 후학을 양성하였습니다.
이경민 교수님은 행동신경학(behavioral neurology), 인지신경과학(cognitive neuroscience)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업적을 남겼을뿐만 아니라, 임상과 기초를 아울러 다학제적 접근을 통해 다양한 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연결하고자 하는 노력을 가장 활발히 보여준 연구자이십니다. 뇌인지과학을 연구함에 있어서는 냉철한 과학자이고 병원에서는 치매를 치료하는 의사이셨으며, 인문학을 탐구하는 사색가이기도 하면서 사회와 인간을 걱정하는 실천가로 행동하셨습니다. 그래서 철학, 심리학을 포함하여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의학의 다학제 학회의 대표인 한국인지과학회(Korea Society for Cognitive Science)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단순히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의 수준을 넘어서 국제적으로 소수민족 극빈곤층의 지역의 일자리, 교육, 보건, 농업, 에너지 사업을 통해 지속 가능한 자립마을을 만드는 국제협력기구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였으며, 특히 국제협력기구와 KOICA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가 공동으로 지원한 ‘필리핀 지역보건교육가 역량강화 사업’을 이끄는 총책임자로 사업을 지휘하였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에서는 의학 구성원의 리더십과 글로벌 의학분야 역량 강화 및 국제사회에 대한 사회적 책무 이행을 위해 필요한 교육·연구·사회공헌활동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에서 부회장으로 활동하셨습니다. 이러한 실천가로서의 관심은 우리가 관심 갖기 어려운 게임에 중독되는 청소년에게까지 미쳐 민간산학(民官産學) 통합기구에서 활동하며 게임과학연구소를 이끌기도 하셨습니다. 이경민 교수님은 대한신경과학회의 발전에도 이바지한 바가 크십니다. 대한신경과학회의 영문학회지 ‘Journal of Clinical Neurolgy’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신 2012년 JCN의 피인용지수(impact factor)는 1.892였으나 2015년부터 2020년 편집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피인용지수는 3.077로 큰 상승으로 보이면서 JCN의 국제적 위상을 높인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국내 의학분야에서 불모지였던 행동신경학·인지신경과학을 연구하신 이경민 교수님이 처음 이 분야의 연구에 발을 디딘 때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도미하여 1988년 MIT에서 Peter H. Schiller 교수 밑에서 학위를 하시면서입니다. Peter H. Schiller 교수는 시각 인지(visual cognition) 및 안구운동 조절의 세계적 대가로 이경민 교수님은 박사학위 과정 중인 1991년 세계적 학술지인 ‘Science’에 붉은 털 원숭이(rhesus monkeys)를 이용하여 시각피질의 V4 영역의 기능을 처음 밝혔습니다. 이후로 시각인지 및 안구운동조절 기전은 코넬대학병원에서 수련을 받는 동안에도 지속적으로 연구하였으며, 이경민 교수님의 다양한 연구 관심 중에서 평생 동안 유지하는 연구주제가 됩니다. 특히 2003년부터 2010년까지 Smith- Kettlewell Eye Research Institute에서 신경생리분야의 저명한 Edward L Keller 박사와 연구하면서 수많은 시각정보를 해석하는 기본적인 법칙을 말한 Hick’s law에 관련되어 frontal eye field (FEF)의 역할을 연구하여 주목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다양한 뇌파(EEG), 경두개자기자극(TMS) 등 다양한 신경생리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인지신경과학을 연구하였는데, 특히 기능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하여 모국어와 제2언어를 사용하는데 언어 중추의 기능적 차이를 규명하여 언어의 습득과정을 밝히는 중요한 연구를 수행하신 바 있습니다. 이는 1997년 ‘Nature’에 발표되었습니다. 이러한 기초 행동신경학·인지신경과학 연구 업적으로 서울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 소장직을 맡아 우리나라 인지과학의 발전을 이끄셨습니다. 이경민 교수님은 기초 과학뿐만 아니라 중개의학에도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우리나라 영장류 연구소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를 했을 뿐만 아니라 치매의 영장류 모델을 만들고 이의 의약학적 확인을 통해 치매약물 개발 및 치매의학연구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이경민 교수님의 슬하에는 이예담, 이예훈 두 아들을 두고 계신데 장남 이예담은 미국 하버드대학교 공중보건대학원 석사학위 과정에 재학 중이며 차남 이예훈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MIT의 기계 공학 학사를 마치고 같은 학부 석박사 학위과정에 입학 예정입니다. 너무 갑작스런 소식에, 아직도 의학을 끊임없이 연구하시고 종교와 인문학의 관계를 탐구하는 사색가로 이웃과 사회를 걱정하는 국제협력의 실천가로 활동하시던 고인의 순간순간 말씀과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인간 사회는 수많은 전대의 꿈을 이어 받아 이뤄나가는 것이 지금까지의 발전으로 생각하면, 이경민 교수님은 교수님의 자녀뿐만 아니라 그분이 직간접적으로 키워내신 대한민국의 수많은 신경학, 인지과학자를 통해 그분의 꿈은 아직도 생생히 살아 있음을 확신하며, 우리 모두 언젠가 어느 순간에 그분의 뜻을 따랐다는 신경학자의 이야기를 듣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단장(斷腸)의 슬픔을 품고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오니 영면(永眠)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