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 추론: 급성 어지럼으로 내원한 55세 남자
Clinical Reasoning: A 55-Year-Old Man with Acute Vertigo
Article information
증 례
고혈압과 당뇨로 투약하고 있던 55세 남자가 일하고 있는 도중 발생한 심한 어지럼과 오심으로 병원을 방문하였다. 이전에 유사한 어지럼을 겪은 적 없었으며, 선행하는 외상 및 감염은 없었다. 어지럼 발생으로부터 12시간이 경과하였을 때 시행하였던 확산강조영상(diffusion weighted imaging)에서 급성 뇌경색을 시사하는 신호강도는 관찰되지 않았다. 말초전정신경병증을 의심하여 입원 가료하고 있었으나 입원 5일째가 되기까지 어지럼 호전이 없고 걷기가 어려워 상급 병원 진료 및 치료를 위해 전원되었다.
환자는 똑바로 앉아 있는 자세에서 좌측으로 기운 머리 위치를 보였다. 왼쪽 눈에서 경도의 안검하수(ptosis)를 보였다. 정면을 주시하고 있을 때 관찰되는 안구정렬의 이상은 없었고 안구운동범위는 정상이었지만, 교대눈가림검사(alternating cover test)를 시행하였을 때 우안의 상사위(hyperphoria)가 보였다. 정위에서 한 곳을 보게 한 상태에서 눈을 가볍게 감았다 뜰 때 두 눈이 왼쪽에서 가운데로 옮겨오는 움직임이 관찰되었다. 한 곳을 보고 있는 상태에서 오른쪽-위쪽-시계방향으로 향하는 자발안진(spontaneous torsional nystagmus beating right-up-clockwise from the patient’s perspective)이 보였다. 이 안진은 오른쪽을 주시하였을 때 강화되었고, 왼쪽을 주시하였을 때는 수평성분 방향이 역전되어 왼쪽으로 향하는 안진이 보였다. 프렌젤(Frenzel)안경을 사용해서 시고정을 제거하였을 때 오른쪽-위쪽-시계방향으로 향하는 자발안진이 더 커져 나타났다. 수평 원활추종안구운동은 양방향으로 손상되어 있었는데 오른쪽으로의 손상이 더 컸다. 수평신속보기의 이상은 없었다. 두진후안진검사(head shaking test)에서 왼쪽-시계반대방향으로 향하는 안진이 보였다. 두부충동검사(head impulse test)는 정상이었다. 팔다리의 근력과 감각 및 심부건반사는 정상이었다. 혼자 앉아 있는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고, 서 있는 자세에서 왼쪽으로 체간이 기울었다. 또한 왼쪽으로 기우는 경향으로 인해 혼자 걷기가 어려웠다.
질문 1. 어지럼을 분류하고 병인을 예측하면?
정확하고 상세한 병력 청취는 어지럼을 진단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첫 걸음이다. 어지럼병력을 들을 때 특히 다음의 세 가지를 살펴보고 어지럼을 분류하는 접근 방법이 유용하다. 첫째, 어지럼 발생 시점, 둘째, 동일하거나 유사한 양상의 어지럼 삽화가 예전에도 반복되었는지 여부, 셋째, 어지럼이 발생하였을 때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는지, 즉 자발어지럼/현훈(spontaneous dizziness/vertigo)인지 체위어지럼/현훈(positional dizziness/vertigo)인지, 이 세 가지 요소를 확인한다. 이후 어지럼을 급성 자발어지럼/현훈(acute spontaneous dizziness or vertigo), 반복자발어지럼/현훈(recurrent spontaneous dizziness or vertigo), 반복체위어지럼/현훈(recurrent positional dizziness or vertigo), 만성 어지럼(chronic dizziness)의 네 가지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증례의 환자는 예전에 경험한 적 없는 어지럼이 응급실 내원 12시간 전에 특정 머리움직임이나 위치와 관계없이 발생해서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급성 자발어지럼으로 분류된다.
급성 자발어지럼을 보이는 질환으로 전정신경염(vestibular neuritis)과 후순환계의 신경계에 발생하는 뇌혈관병변(posterior circulation stroke)이 가장 흔하므로, 우선적으로 이 둘을 감별해야 한다. 급성 자발어지럼과 함께 구음장애, 감각저하와 같은 다른 신경학적 증상이 발생하였다면 혈관 병인에 의한 중추병터의 존재를 강하게 시사한다. 하지만 증례의 환자와 같이, 중추전정병터로 인해 급성 자발어지럼을 겪는 환자들이 다른 국소신경계 증상 없이 어지럼을 유일한 증상으로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1]. 또한 증례에서 나타났던 것과 같이, 증상 발생으로부터 첫 48시간 안에 뇌 자기공명영상(magnetic resonance imaging, MRI)을 시행하였을 때 실제 뇌경색 환자의 12-20%에서 확산강조영상이 위음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 MRI검사의 이런 한계로 인해 다른 신경계증상이 없는 고립현훈(isolated vertigo)을 진단하기 위한 여러 방법이 모색되어왔다. 침상 곁에서 비교적 쉽고 빠르게 전정안반사를 평가할 수 있는 두부충동검사가 개발되고 널리 알려지면서, 두부충동검사와 주시유발안진 및 스큐편위의 세 가지 소견을 토대로 말초전정신경병과 중추전정신경병을 구별하는 진찰 방법(head impulse, nystagmus, test of skew [HINTS])이 높은 특이도(specificity)를 유지하면서 MRI 보다 더 높은 민감도(sensitivity)를 가진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2]. 증례에 HINTS를 적용해보면, 두부충동검사가 음성이었고, 수평방향 주시에 따라 안진방향이 역전되어 주시유발안진(gaze evoked nystagmus, GEN)이 있었으며, 스큐편위가 있어 중추병변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간단하게 적용이 가능하고 높은 민감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임상적으로 유용하지만 HINTS검사법은 한계를 가진다. HINTS의 세가지 구성 요소 중에서 스큐편위는 엄밀히 말해서 말초전정신경병증에서도 관찰될 수 있는 소견이며[3], 자발안진이 있는 상태에서 침상 곁에서 시행하는 검사로는 스큐편위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 또한, 주시유발안진의 발생은 신경적분체(neural integrator)의 침범 여부에 따라서 달라진다. 즉 소뇌경색이나 일부 뇌간경색에서 주시유발안진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두부충동검사 소견이 중추현훈 여부를 판별함에 있어 중요한 소견으로 간주되었지만, 장비와 훈련 없이 침상 곁에서 시행하는 두부충동검사 결과를 제대로 판단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며, 일부 소뇌경색과 뇌간경색에서 두부충동검사가 양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4]. 따라서 고립현훈을 진단할 때 단일 검사 소견이나 일부 임상 양상에 의거해서 말초전정신경병증인지 중추전정신경병증인지 구분해서는 안 된다. 환자의 과거력 및 임상 양상, 병의 진행 과정과 진찰소견에 대한 면밀한 관찰을 토대로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질문 2. 진찰 소견을 정리하고 병변을 예측하면?
급성 자발어지럼 환자에서 말초전정병증과 중추전정병증을 감별하기 위해서는 뇌신경기능 및 사지운동과 감각기능, 소뇌실조를 포함한 일반 신경계진찰뿐 아니라, 자발안진 및 주시유발안진의 유무와 양상, 안구기울임반응(ocular tilt reaction)의 유무와 방향, 독립보행 및 체간 균형을 확인해야 한다. 증례의 환자는 똑바로 앉아 있는 자세에서 좌측으로 기운 머리 위치를 보였고, 왼쪽으로의 머리기울임(head tilt)과 스큐편위가 있어 좌측 안구기울임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또한, 주시점을 보게 하고 눈을 감았다 뜨라고 하였을 때 두 눈이 왼쪽에서 가운데로 옮겨오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이는 안구의 정적 가쪽쏠림이 왼쪽으로 있음(ocular static lateropulsion to the left side)을 뜻한다[5].
한편, 환자는 오른쪽-위쪽-시계방향으로 향하는 자발안진을 보였다. 이는 프렌젤안경을 이용하여 시고정을 제거하였을 때 강화되었으며, 오른쪽을 보게 하였을 때 즉 안진이 향하는 방향으로 보게 하였을 때에도 강화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안진은 좌상분지 전정신경염(left superior divisional vestibular neuritis)에서 나타나는 안진과 흡사하다. 하지만 증례의 환자에서 자발안진이 향하는 방향과 반대로 보게 하였을 때 안진방향이 역전되면서 주시유발안진이 나타났으며, 두진후안진검사에서도 자발안진방향과 반대 방향의 안진이 나타났다. 만일 안진의 방향이 주시방향에 따라 반대로 바뀐다면 이는 안와의 특정 위치에서 안구를 안정적으로 유지시켜주는 신경적 분체의 손상을 의미하므로, 중추병변을 시사하는 강력한 징후가 된다[6]. 또한 말초전정신경병 급성기에 두진후안진은 이미 있는 자발안진의 세기가 더 강화되는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며, 증례와 같은 두진(head shaking)에 의한 방향 역전은 나타나기 힘들다.
종합하였을 때, 증례의 환자는 왼쪽으로 안구기울임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왼쪽으로 쏠리는 안구 정적 가쪽쏠림이 있으면서, 자발안진방향으로 미루어 보아 왼쪽에 전정기능저하가 있는 전정불균형(vestibular imbalance with left hypofunction)을 보이고 있다. 한편, 주시유발안진이 있고, 두진에 의해 안진 방향이 역전되는 현상을 보였는데 이는 신경적 분체의 기능저하를 가져올 수 있는 뇌간 및 소뇌의 병변을 시사하며, 특히 병변쪽으로의 두진후안진(ipsilesional head shaking nystagmus)이 유발되는 왼쪽 가쪽연수병변의 발생을 시사한다. 또한, 환자의 왼쪽 눈에서 관찰된 안검하수는 병쪽 호너증후군(ipsilesional Honer's syndrome)의 존재를 시사하는데, 이는 눈교감신경로(ocular sympathetic pathway)가 하행하는 가쪽연수경색에서 잘 나타날 수 있는 소견이다[5].
증 례 (계속)
환자가 응급실에 내원하였던 당일 비디오안구운동기록계와 전정기능검사들을 시행하였다. 자발안진의 방향은 오른쪽-위쪽-시계방향이었고, 시고정을 제거하였을 때 안진 강도가 커졌다(Fig. A). 자발안진의 느린 성분의 파형은 시고정이 있을 때는 선형(linear)으로 나타났으나, 시고정을 제거하였을 때 느린 성분의 속도가 감소하는 형태(decreasing slow phase velocities)로 보였다. 수평 주시를 하였을 때 주시유발안진이 있었다(Fig. B). 비디오두부충동검사는 여섯 개 세반고리관의 전정안반사가 모두 정상이었다. 온도안진검사는 정상이었다. 안저사진검사에서 왼쪽으로 안구회선(ocular torsion)이 있었다(Fig. C). 중추병변의 존재가 강하게 의심되어 어지럼 발생으로부터 5일이 경과한 시점에 확산강조영상을 포함한 뇌 MRI를 추적 시행하였을 때, 왼쪽 가쪽연수 뇌경색이 관찰되었다(Fig. D).
토 의
뇌혈관질환에서 나타나는 어지럼과 현훈은 흔히 다른 신경학적 증상 및 징후를 수반한다. 하지만 다른 징후 없이 어지럼 및 현훈증상 단독으로 나타나는 혈관현훈(isolated vascular vertigo)도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허혈성뇌혈관질환의 20%가 후순환계 영역에서 발생하며, 어지럼은 척추바닥동맥질환에서 나타나는 가장 흔한 증상 중의 하나다[7]. 뇌척추바닥동맥부전에 기인한 현훈 환자들 중 62%가 적어도 한 번 이상의 현훈 삽화를 겪었고, 19%는 최초 증상으로 현훈을 경험한다. 또한 어지럼 및 현훈으로 응급실을 방문하였던 환자들은 일반 인구와 비교하였을 때 4년간의 추적 관찰기간 동안 3배 높은 뇌졸중 위험도를 가졌다[8].
후순환계 병변에서, 사지의 운동마비 증상 없이 어지럼 단독으로 발현하기 쉬운 대표적인 병변이 소뇌경색과 가쪽연수경색이다. 가쪽연수경색 환자들은 주위나 자기 자신이 돌거나 움직이는 듯한 어지럼 이외에도, 환자 자신의 몸이나 주위 환경이 기울어져 있거나, 정신과적 증상으로 오인하기 쉬운 공간감각 인지이상을 호소하기도 한다. 전정신경계와 관련된 다양한 신경계 구조물이 위치해 있기 때문에 가쪽연수경색 환자들은 다양한 눈운동이상을 나타낼 수 있다(Table). 증례에서 보였던 정적 안구쏠림(static lateropulsion)은 가쪽연수경색에서 잘 관찰되는 안구운동이상 소견 중의 하나이다. 증례의 환자는 신속보기가 정상이었지만, 일부 가쪽 연수경색 환자는 특징적으로 신속보기의 병변쪽쏠림(saccadic ipsipulsion)을 보인다. 이는 병변쪽으로의 신속보기는 과대측정(ipsilesional hypermetria)이, 병변반대쪽으로의 신속보기는 과소측정(contralesional hypometria)되는 현상을 말한다[9]. 신속보기의 병변쪽쏠림 현상은 아래올리브핵(inferior olivary nucleus)에서 나오는 축삭이 반대쪽 아래소뇌다리(inferior cerebellar peduncle)를 향해 주행하는 과정에서, 뇌간 중앙선에서 교차(decussation)하기 전에 손상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한편, 가쪽연수경색에서는 신속보기의 정확도(accuracy)뿐 아니라 궤적(trajectory)에도 이상이 발생할 수 있다. 수평신속보기나 수직신속보기를 할 때 정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회선신속보기 성분(torsional blip)이 관찰되기도 한다[10].
가쪽연수경색 환자가 자발안진을 보일 때는 수평자발안진이거나, 수평성분과 회선성분 안진이 결합되어 있는 양상으로 흔히 나타난다. 자발안진의 느린 성분 파형은 보통 선형(linear)인데, 벡터분석을 해보면 수평 및 앞세반고리관(horizontal and anterior semicircular canals)에서 대뇌피질중추로 이어지는 정보전달경로가 손상되어 나타나는 형태로 파악된다. 양쪽 수평 주시를 시켰을 때 자발안진의 방향이 역전될 수 있다(GEN). 가쪽연수경색에서 자발안진이 주로 병변반대방향으로 향하는 것과 반대로, 두진후안진은 거의 항상 병변쪽으로 향한다[11]. 눈기울임반응은 가쪽연수경색에서 흔히 관찰된다[12]. 스큐편위가 있을 때 병변쪽 눈이 하사시(ipsilesional hypotropia)가 된다. 증례의 환자에서 볼 수 있듯이, 눈은 보통 병변쪽으로 회선되지만 회선 정도는 양안에서 동등하지 않고, 보통 하사시가 된 병변쪽 눈이 더 많이 외회선(extorsion)된다. 머리기울임(head tilt) 또한 병변쪽으로 향한다. 스큐편위 및 머리기울임반응은 이석기관 반응을 중개하는 경로에 불균형이 발생해서 나타나는데, 일부 사례에서는 수직세반고리관 경로의 불균형에서 기인한다고 추정된다. 한편, 전정핵을 직접 침범하지 않는 한, 가쪽연수경색에서 두부충동검사는 정상이다. 경부전정유발근전위 검사에서는 병변쪽 반응이 지연되거나,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KEY POINTS
• 급성 자발어지럼을 보일 때 전정신경염과 후순환계에 발생하는 뇌혈관병변 양자를 감별해야 한다
• 뇌혈관병변에서 나타나는 어지럼 및 현훈은 흔히 다른 신경학적 증상 및 징후를 수반하지만, 다른 징후 없이 어지럼 및 현훈 증상 단독으로 나타나는 혈관현훈이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 고립 혈관현훈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병변으로 소뇌경색과 국소뇌간경색이 있다.
• 뇌허혈로 인한 혈관현훈 증상 발생으로부터 첫 48시간 안에 MRI를 시행하였을 때 12-20%에서 확산강조영상이 위음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
• 급성 자발어지럼 환자에서 말초전정병증과 중추전정병증을 감별하기 위해서는 자발안진 및 주시유발안진의 유무와 양상, 안구기울임반응의 유무와 방향, 두진후안진, 신속보기, 독립보행 및 체간 균형을 포함한 신경계진찰 소견을 종합해서 판단해야 한다.
• 자발안진이 있는 환자에서 두부충동검사가 정상인 경우 중추전정병증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 안진의 방향이 주시방향에 따라 반대로 바뀌는 주시유발안진은 중추병변을 의미하는 강한 징후이다.
• 가쪽연수경색 환자들은 여러 안구운동이상을 나타낸다. 병변쪽으로 정적 안구쏠림이나 신속보기 병변쪽쏠림을 보일 수 있으며, 주시유발안진, 다양한 양상의 자발안진, 병변쪽으로 향하는 두진후안진, 병변쪽으로 향하는 안구기울임반응 및 호너증후군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