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두개내압저하(spontaneous intracranial hypotension)는 경막천자를 일으킬 시술 또는 외상의 병력 없이 뇌척수액의 누출이 발생하여 두개내압이 저하되는 질환이다[
1-
3]. 환자들은 기립 자세에서 악화되고 누운 자세에서 호전이 되는 기립두통(orthostatic headache)을 특징적으로 호소하게 된다. 자발두개내압저하로 인한 신경계 합병증으로는 경막하출혈, 경막하삼출, 뇌신경마비, 의식변화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최근 10년 사이에 자발두개내압저하로 인한 뇌정맥혈전증(cerebral venous thrombosis)의 증례가 다수 보고되었으며, 자발두개내압저하의 환자 중에서 1-2%의 비율로 드물게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4,
5]. 자발두개내압저하로 인한 뇌정맥혈전증의 발생기전은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Monro-Kellie 원칙에 따른 대뇌정맥체계의 보상성 확장, 대뇌부력의 변화에 따른 정맥내벽의 손상, 정맥혈의 점도 증가 등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4].
뇌정맥혈전증에서는 항응고 치료가 일반적이지만, 자발두개내압저하로 인한 뇌정맥혈전증에 대한 치료 방법은 연구에 따라 다양하고 아직까지 확립된 바가 없다[
5]. 저자들은 자발두개내압저하으로 인하여 뇌정맥혈전증이 합병된 환자에서 항응고 치료를 시행하지 않고 경막외혈액첩포술(epidural blood patch) 후 뇌정맥혈전증이 호전된 증례를 경험하게 되어 이를 보고하려 한다.
증 례
특별한 두통 병력이 없었던 42세의 여성이 약 3주 전에 발생하여 날마다 지속되는 양상의 심도의 두통으로 인하여 외래를 방문하였다. 두통은 앉거나 서면 시각아날로그척도(visual analogue scale, VAS) 점수상 8점까지 심해지고, 누우면 1분 이내에 0점까지 호전되는 기립두통의 양상이었다. 두통 이외의 신경계통 및 다른 신체계통의 이상 증상은 전혀 호소하지 않았다. 두통 발생 이전의 외상력과 시술력은 전혀 없었고 신경계 진찰상 특이 소견은 없었다. 임상병력상 자발두개내압저하을 먼저 의심하고 입원 후 침상 안정과 0.9% 생리식염수를 시간당 80 mL의 속도로 정맥주사하는 보존적 치료를 시작하였다. 두통의 진단을 위하여 뇌 자기공명영상과 자기공명척수촬영을 시행하였다. 뇌 자기공명영상의 T1 강조영상에서 경수막이 조영증강되었고(
Fig. 1-A), 자기공명척수촬영에서 제7, 8번 흉추 부위의 뇌척수액 누출 소견이 확인되었다(
Fig. 1-B). 보존적 치료를 유지하면서 환자의 기립두통은 호전되는 추세로 입원 5일째에 기립 시 두통의 최고 강도가 5점으로 감소하였고 자세 변화에 따른 두통의 시작과 악화의 속도도 늦어진다고 하였다. 두개내압의 저하를 시사하는 기립두통과 함께 신경영상검사에서 뇌척수액 누출을 시사하는 결과를 확인하였으므로 상환은 자발두개내압저하에 의한 두통으로 진단할 수 있었다. 상기 소견으로 임상진단을 위한 자료는 충분하다고 판단하여 두개내압의 측정을 위한 뇌척수액검사는 생략하였다. 보존적 치료만으로 환자의 두통 경과가 뚜렷한 호전을 보임에 따라 환자와 상의하여 경막외혈액첩포술은 입원 1주째 임상경과를 확인한 뒤 그 시행을 결정하기로 하였다. 입원 7일째 기상 후 환자는 자세와 관계 없이 누워도 호전되지 않는 VAS 5점으로 지속되는 중등도 두통을 새롭게 호소하였다. 동반 증상으로 왼쪽의 안면, 두부, 상하지의 근위부부터 원위부에 이르기까지 저릿한 이상감각 증상과 함께 국소 마취를 받은 것과 유사한 감각의 저하가 느껴진다고 호소하였으며 동일 부위로 근력저하는 관찰되지 않았다. 자발두개내압저하에 따른 신경계 합병증이 발생하였을 가능성을 고려하여 시행한 뇌 자기공명영상의 기울기에코(gradient echo)영상에서 상시상정맥동과 우측겉질정맥의 저신호강도를 보여 뇌정맥혈전증이 의심되었고(
Fig. 2-A), 액체감쇠역전회복(fluid attenuated inversion recovery) 영상에서 우측 두정엽의 고신호강도가 확인되었다(
Fig. 2-B). 뇌정맥혈전증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위하여 이어서 시행한 자기공명정맥조영술의 유체속도감소(time-of-flight)영상에서 상시상정맥동 내부의 고신호강도가 관찰되어 혈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
Fig. 2-C). 하지만 최대강도투사(maximum intensity projection)영상에서 뇌정맥혈전증의 소견은 뚜렷이 관찰되지 않았다(
Fig. 2-D).
뇌정맥혈전증의 발생과 관련하여 시행한 일반혈액검사, 일반생화학검사, 혈액응고검사, C단백활성도와 S단백활성도는 정상이었다. 자가면역질환 감별을 위한 항중성구세포질항체(anti-neurtrophil cytoplasmic antibody), 류마티스인자(rheumatoid factor) 및 루푸스항응고인자(lupus anticoagulant), 항인지질항체(antiphospholipid antibody)검사도 모두 정상이었다. 따라서 임상병력과 경과, 실험실검사결과, 신경영상검사를 바탕으로 자발두개내압저하 발생 후 합병된 뇌정맥혈전증으로 판단하였다.
환자는 감각증상과 두통을 호소하였지만 이로 인한 명백한 뇌경색, 뇌출혈은 관찰되지 않았다. 따라서, 항응고 치료 대신에 자발두개내압저하에 대한 경막외혈액첩포술을 먼저 시행하면서 신경학적 증상의 호전 여부를 확인하기로 하였다. 입원 11일째 환자에게 자가정맥혈액 20 mL를 제7, 8번 흉추 부위로 주사하는 경막외혈액첩포술을 시행하였다. 경막외혈액첩포술을 받은 다음날 평가하였을 때, 새롭게 발생한 두통과 함께 기립두통도 사라졌고, 왼쪽의 감각증상도 호전되었다. 환자에게서 기본적으로 실험실검사에서 응고항진성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최근 피임약 복용력이 없었고 경막외혈액첩포술 이후에 임상경과가 호전되는 추세였으므로 뇌정맥혈전증의 예방을 위한 항응고제 투여는 하지 않고 추적관찰하기로 계획하였다. 퇴원 일주일 후에도 환자는 두통이나 다른 신경학적 증상의 재발은 없는 안정적 경과를 보였다. 최종적으로 퇴원 3개월 후 추적관찰을 위하여 시행한 뇌 자기공명영상의 기울기에 코와 액체감쇠역전회복영상에서 신호강도 이상 소견은 더 이상 관찰되지 않았고(
Fig. 3-A,
B), 자기공명정맥조영술의 유체속도감소영상에서 상시상정맥동 내부의 고신호강도가 더는 관찰되지 않아서 뇌정맥혈전증의 호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
Fig. 3-C).
고 찰
본 증례에서는 자발두개내압저하가 발생한 상황에서 비기립두통과 신경학적 증상을 일으키는 뇌정맥혈전증이 발생하여 항응고 치료 없이 자발두개내압 치료 목적의 경막외혈액첩포술 치료만으로도 뇌정맥혈전증의 임상경과와 신경영상검사에서의 호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발두개내압저하는 보통 양성 질환으로 진단과 치료가 비교적 용이한 편이지만 본 증례와 같이 두통 양상의 변화나 신경학적 증상이 새로이 나타나면 뇌정맥혈전증을 포함하는 신경계 합병증의 발생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자발두개내압저하의 임상경과와 진단검사의 소견이 기대와 다르거나 비전형적인 경우도 있으므로 자발두개내압저하에 대한 임상적 접근은 신중해야 한다[
1].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자발두개내압저하 환자를 대상으로 뇌척수압을 측정하였을 때 두개내압저하의 기준인 60 mmH
2O 이하인 경우는 34%에 불과하였으며 대다수 환자들의 두개내압은 정상범위에 해당하였다. 뿐만 아니라, 자발두개내압저하로 진단된 환자가 기존 치료에 대한 치료 반응이 불량한 경우에 추간판성미세돌출이 중요한 원인일 수 있음이 제시되기도 하였다.
본 증례에서는 뇌 자기공명영상의 기울기에코 영상에서 우측대뇌겉질과 상시상정맥동의 뒤측에서 정맥 내 혈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
6]. 액체감쇠역전회복영상에서는 이와 연관된 우측대뇌겉질과 상시상정맥동의 전체에 걸쳐 고신호강도가 관찰되어서 뇌정맥혈전증의 발생을 설명하는 정맥혈의 저류를 의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뇌정맥혈전증의 급성기 때 액체감쇠역전회복영상에서 혈전이 고신호강도로 관찰될 수 있기 때문에 혈전과 정맥혈의 저류의 명확한 감별은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7].
자발두개내압저하에 합병된 뇌정맥혈전증에서의 치료는 아직까지 확립되지 않았다. 자발두개내압저하에 합병된 뇌정맥혈전증의 증례보고를 취합한 문헌고찰에서는 총 35명의 환자 중 약 절반의 환자(54.3%)가 단독 항응고 치료를 받은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5]. 본 증례와 유사하게 경막외혈액첩포술만 치료받은 경우는 20.0%에 해당하였고, 상기 두 치료를 모두 시행받은 경우는 22.8%였다. 치료 분류에 의한 세 군 모두의 대부분 환자들은 좋은 경과가 보고되었지만, 단독 항응고 치료군에서 한 명은 사망하였다. 항응고 치료는 일반적으로 뇌정맥혈전증이 발생하면 먼저 고려하는 치료법이지만, 자발두개내압저하의 신경계 합병증으로 두개내출혈의 위험 증가도 치료법을 선택할 때 고려되어야 한다. 실제, 세 치료군 중에서 단독 항응고 치료군에서 치료 후 두개내출혈의 발생률이 21.1%로 가장 높았던 반면에 경막외혈액첩포술만 치료받은 군에서 치료 후 두개내출혈의 발생은 없었다.
본 증례에서는 자발두개내압저하와 뇌정맥혈전증 발생 사이의 시간 연관성이 분명하고, 실험실검사에서 응고항진성을 배제할 수 있으며, 피임약 복용과 같이 응고항진성을 의심할 병력이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원발질환인 자발두개내압저하에 대한 교정을 목표로 하는 경막외혈액첩포술을 단독으로 시행하였고 자발두개내압저하와 함께 뇌정맥혈전증의 호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자발두개내압저하에 합병된 뇌정맥혈전증에서 경막외첩포술의 단독 치료가 두개내출혈 위험 증가의 부담이 없는 합리적 선택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