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르페나피르(Chlorfenapyr)는 살충제로서 미토콘드리아의 산화인산화를 방해하여 아데노신삼인산(adenosine triphosphate) 형성을 억제하고 세포사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 클로르페나피르는 World Health Organization에 의하여 보통독성(Class II)으로 규정되어 있으나 인체독성에 대한 소수의 증례에서 높은 치사율로 보고되고 있다[2,3]. 저자들은 자살시도로 클로르페나피르를 섭취한 환자의 특징적인 magnetic resonance imaging (MRI) 소견과 이전에 보고된 적 없는 혈액관류법(hemoperfusion) 치료 후의 임상경과를 보고하고자 한다.
증 례
52세 남자가 의식저하로 응급실에 내원하였다. 환자는 뇌전증, 고혈압, 당뇨병으로 약물 치료 중이었고, 위궤양천공 및 조기위암으로 지난 1년 동안 두 차례의 수술을 받았다. 내원 1시간 30분 전 음주를 하였고 이후 지인들에 의하여 의식저하 상태로 발견되었을 때 클로르페나피르 100 mL 약병이 비어있는 상태로 함께 발견되었다. 의식은 혼미한 상태였고, 생체징후는 혈압 70/40 mmHg, 맥박 96/min, 호흡수 22/min, 체온 36.0°C였으며, 동맥혈가스분석에서 pH 7.29, pCO2 30 mmHg, pO2 105 mmHg, HCO3 14.4 mmol/L로 대사산증을 보였다. 기관내삽관 및 혈압상승을 위한 처치가 이루어졌으며 약물 중독 가능성에 대하여 활성탄이 투여되었다. 발작 가능성을 고려하여 항경련제의 정맥 투여도 병행되었다. 대사산증이 지속되어 중환자실 전실 후 지속신대체요법(continuous renal replacement therapy)을 3일 동안 시행하였다. 입원 다음 날 시행한 뇌파에서 알파혼수(alpha-pattern coma) 소견이 관찰되었으며 비경련뇌전증지속상태(nonconvulsive status epilepticus)의 증거는 관찰되지 않았다. 입원 3일째 환자는 정상적인 의식수준으로 회복되었다. 환자는 자살시도로 살충제를 섭취한 사실 및 지난 1년동안 수술을 비롯한 치료 과정에서 우울증이 있었음을 인정하였다. 입원 5일 및 8일째 독성 대사물의 추가적인 제거를 위하여 혈액관류법(hemoperfusion)이 두 차례 시행되었다. 환자는 신경계 증상 악화 소견 없이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였으나 입원 12일째 고열과 의식저하를 보였다. 재시행한 뇌파에서 5-6 Hz의 서파가 관찰되었고 뇌 MRI에서 뇌들보, 속섬유막, 겉질척수로, 소뇌다리 등의 백질에서 광범위하게 양측성, 대칭적으로 T2 강조영상에서의 고신호강도와 확산강조영상에서의 확산제한이 뚜렷하게 관찰되었다(Fig. A). 다음 날 의식이 악화되었으며 양측 하지 위약이 새롭게 발견되었고 3일 이내에 완전마비로 악화되었다. 시행한 척수 MRI에서는 척수백질의 전반적인 부종 및 T2 강조영상의 고신호강도 변화가 확인되었다(Fig. B). 의식은 다시 서서히 호전되어 정상수준으로 회복되었으나 양측 하지마비는 고용량의 스테로이드 치료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입원 2개월 후 시행한 추적 뇌 MRI에서 T2 강조영상의 고신호강도는 대부분 정상화되었으며, 척수 MRI에서 T2 강조영상의 고신호강도는 이전에 비하여 범위는 감소하였으나 여전히 남아있었다. 환자는 입원 두 달째 적극적인 재활 치료를 위하여 재활 전문병원으로 퇴원하였으나 그로부터 1년 후 폐렴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사망하였다.
고 찰
클로르페나피르를 경구 섭취한 환자의 임상경과는 두 가지로 구분 된다[2-5]. 초기에 발열, 발한, 횡문근융해, 대사산증, 급성 신부전, 의식저하 등이 발생하여 빠르게 악화되며 1주 이내에 사망에 이르는 급성 경과와 초기에 증상이 없거나 발한, 어지럼증, 두통 등의 경미한 증상을 보이다 1-2주 후에 발열, 과호흡, 의식저하, 사지마비 등이 발생하면서 사망하거나 후유증을 남긴 채 생존하는 경과가 있다.
본 증례의 환자는 초기에 급성 의식저하를 보였으나 호전되었고, 중독 12일째 다시 증상이 악화되었으나 사망에 이르지 않고 신경계 후유증을 남기며 생존하는 경과를 보였다. 초기 증상 발생, 안정기 그리고 지연된 증상 발생이라는 경과는 이미 보고된 양상과 유사하지만, 초기 경과가 급성으로 사망에 이르는 경과와 유사하였음에도 안정기를 거쳐 생존하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으며, 지연된 증상을 보고하였던 다른 증례들에서 20 mL 이하의 약물을 섭취하였음에도 사망에 이르거나 하지마비의 후유증이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100 mL를 섭취한 것으로 추정되는 증례 환자의 경과는 상대적으로 양호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3,5]. 본 증례의 환자가 이러한 다른 임상경과를 보인 원인으로 지속신대체요법 및 혈액관류법을 적극적으로 시행한 점을 들 수 있다. 지속신대체요법은 혈압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지속되는 대사산증을 교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되었으며, 혈액관류법은 지속신대체요법 중단 후에 독성물질의 배출을 목적으로 추가적으로 시도되었다. 혈액관류법은 흡착제를 이용하여 독성 물질을 제거함으로써 반투막을 이용한 혈액투석에 비하여 친지질성, 단백질결합, 고분자 물질의 제거에 유리하다[6]. 클로르페나피르는 친지질성 및 단백질결합 성질을 갖고 있어 혈액관류법에 의하여 더 효과적으로 제거될 가능성이 있다[1].
환자의 MRI 영상은 이전에 보고된 증례들과 유사하게 백질뇌척수병증(leukoencephalomyelopathy)의 소견을 보였다(Fig.) [2,5]. 양측에 대칭적으로 대뇌, 소뇌, 뇌줄기의 백질 신경로를 따라 T2강조영상에서 고신호강도로, 확산강조영상에서 확산제한으로 병변이 나타났으며, 피질 및 피질하 회색질은 보존되었다. 이러한 영상 소견은 클로르페나피르를 투여한 동물 실험에서 신경조직학적으로 말이집병이 관찰된 결과와도 부합한다[1]. 백질의 선택적 취약성은 미토콘드리아의 기능 장애에 의한 에너지 결핍에 백질이 보다 취약한 것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7]. 2개월 추적 MRI 결과에서는 뇌보다 척수에서 T2 강조영상의 고신호강도가 더 오래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클로르페나피르 중독은 높은 치사율을 보이며 초기에 증상이 없거나 호전된 이후에도 지연된 악화가 발생하기도 하므로 초기부터 독성 물질 제거를 위한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본 증례는 클로르페나피르의 친지질성에 근거하여 혈액관류법을 시행하는 것이 클로르페나피르 중독 치료에 유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