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최근 약탈적 학술지(predatory journal)를 포함한 가짜 학술지와 가짜 학술대회가 학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가짜 학술지와 가짜 학술대회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파급하여 학문 발전을 저해할 뿐 아니라 연구비 남용 등 연구윤리 위반이 되기도 한다. 왜 이러한 문제가 일어났는지, 어떠한 방지 대책이 있는지 다루어보려 한다.
본 론
1. 가짜 학술지 특성
2000년 중반까지 학술지는 대부분 구독기반 출판(subscription based publication)이었다. 구독기반 출판에서는 독자가 구독료를 지불하고 학술지를 구독한다. 종이출판일 때는 우편으로 배송받은 묵직한 학술지를 읽었고, 온라인출판이 보급된 이후에는 구독료를 지불하고 학술지의 웹사이트에 접속하여 읽고 있다. 온라인출판에서는 학술지 전체가 아니라 관심 있는 논문 하나만 선택하여 구독료를 지불하고 읽기도 한다. 이처럼 구독기반 출판은 독자가 지불하는 구독료로 출판사가 운영된다. 그러므로 출판사는 저자보다는 독자에게 집중하게 된다. 즉, 많은 독자를 확보할수록 출판사가 이익을 남기게 되므로 영리 출판사일지라도 독자가 기꺼이 돈을 내고 구독하려는 좋은 논문을 싣고자 노력한다. 좋은 논문이란 당연히 전문가 심사를 거치고 편집인이 학문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선택하는 논문이다. 이런 체제가 학술지의 전통적인 출판체제였고 저자는 출판사에게 논문 저작권을 이양(copyright transfer)하고 무료로 논문을 출판해왔다.
전통적인 구독기반 출판과는 달리, 2000년에 들어서서 open access 출판이라는 새로운 출판체제가 도입되었다. 2003년 창간된 PLOS 계열 학술지가 대표적이다. Open access 출판에서는 모든 독자가 무료로 논문을 볼 수 있다. 대신 저자, 연구비 재단, 학술단체 등이 출판 비용을 지불하고 출판된 논문을 모든 사람에게 공개한다. 저자가 출판 비용을 지불하면 gold open access, 기관이나 학술단체가 지불하면 platinum open access라고 구분한다[1]. 저자로서는 자신의 연구를 모든 사람에게 공개하면 연구내용을 널리 알리고 나아가서 많은 연구자가 인용하여 연구 중요성이 높아지고 따라서 연구 영향력이 커지는 장점이 있다. 온라인출판 기술이 도입되어 종이 인쇄 과정이 생략되면서 open access 출판이 훨씬 수월하게 되었다. Open access 출판에서 저작권은 대부분 저자가 보유한다. 국내 출판 open access 학술지에서는 저작권을 발간인 또는 학회가 보유하여 open access 출판의 전형적 저작권 보유와는 다른 경우도 있다. 이는 논문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학회가 출판비용의 많은 부분을 부담하면서 open access 출판하는, 국내 학계의 특수성 때문으로 여겨진다.
2008년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에서는 국가연구비로 수행한 모든 연구결과는 논문으로 발표할 때 게재 승인 즉시 PubMed Central에 제출하거나 저자가 원하면 open access 학술지에 출판하여 연구결과를 모든 연구자에게 공개하라는 방침을 선언하였다[2]. 여기에는 미국 내 연구자뿐만 아니라 비싼 구독료 때문에 학술지를 구독할 수 없는 전 세계의 연구자들과도 연구결과를 공유한다는 open science 취지도 포함되어 있다. 같은 흐름으로 2017년 Bill and Melinda Gates 재단도 재단 연구비로 수행한 연구결과를 출판할 때 출판 비용을 재단에서 별도로 부담하는 open access 출판을 하여 모든 연구자에게 공개한다고 발표하였다[3]. 또, 유럽연합 연구비 지원 재단도 재단 예산으로 수행된 모든 연구결과는 2020년부터는 open access 출판이 원칙이라고 제안하였다[4]. 이처럼 open access 출판은 과학 연구결과를 무료로 공개한다는 선의의 목적으로 출발하였다.
시장 규모로 볼 때 종이출판과 온라인출판 모두에서 구독기반 출판이 많아서 2014년 총 5억불 출판시장 규모 중 open access 출판은 5% 정도이다[5]. 그러나 논문 편수로 보면 17%가 open access 논문이다. 시장 규모와 논문 편수의 비율이 다른 것은 open access 출판 비용이 구독기반보다 저렴하고 또 비영리 출판이나 DB 등 다른 형태로 공개되는 논문도 있기 때문이다[5]. 그러나 구독기반과 open access 기반 논문들을 동시에 출판하는 hybrid 학술지가 점점 증가하고 있고 공공 연구비 지원으로 수행한 결과를 공개한다는 원칙이 여러 나라에서 확대되면 open access 출판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그런데 open access 출판을 하는 일부 상업출판사에서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원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목적으로 출판하는 학술지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즉 출판비를 부담하는 저자에게 집중하면서 전문가 심사를 엄격하게 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심사 과정을 거치치 않고 많은 논문을 출판하는 학술지가 생겨났다. 특히 온라인출판에서는 종이출판과는 달리 지면 제약이 없어 비교적 저렴하고 간략하게 출판이 진행되므로 더욱 가속화되었다. Open access 출판에서 가짜 학술지의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하여 가짜 논문을 투고하였더니 300여 종의 open access 학술지 중 약 60%의 학술지가 게재 승인하여 가짜 학술지의 실체를 보여주었다[6]. 더 나아가서 연구자들에게 논문 투고를 요청하는 메일을 끊임없이 보내어 저자를 확보하는 학술지가 생겨나면서 약탈적 학술지라는 이름도 붙게 되었다[7]. 오로지 출판비만을 목적으로 하는 가짜 학술지, 가짜 출판사가 생겨난 것이다. 2014년 한 해 동안 8,000여 종의 가짜 학술지가 출판되었고 이들 학술지에 출판된 논문은 420,000건으로 알려져 있다[8].
또 다른 형태의 가짜 학술지로 journal hijacker가 있다[9]. Journal hijacker는 정규 학술지의 이름을 도용하여 가짜 웹사이트를 개설하여 저자를 현혹한다. 이메일 등을 통하여 논문 투고를 권유받으면 연구자들은 익숙한 정규 학술지이기 때문에 의심 없이 이메일에 연결된 웹사이트로 들어가서 논문을 투고하게 된다. 이후 논문출판비를 송금하면 연락이 완전히 끊어지고 웹사이트도 연결되지 않는다. 약탈적 학술지는 논문을 출판하지만, journal hijacker는 논문을 출판하지 않는다. Journal hijacker의 표적 학술지는 종이출판을 하고 웹사이트를 운영하지 않는 정규 학술지다. 의학을 포함한 과학 분야 학술지는 대부분 웹사이트를 운영하므로 journal hijacker 피해가 비교적 드물다. 그러나 만약 이메일로 투고 요청을 할 리가 없는 정규 학술지가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투고 요청 이메일을 보내온다면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연결된 웹사이트가 출판비만을 가로채는 가짜 웹사이트일 수 있다. 이메일에 첨부된 투고 관련 조건이 현실이기에는 너무 좋다고 여겨지면 이메일로 받은 웹사이트로 접속하지 말고 반드시 출판사 또는 국제 DB (Web of Science, Scopus)에 연결된 학술지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journal hijacker로 의심되면 해당 출판사나 학술지에 알려 추가 피해자가 없도록 하여야 한다.
가짜 학술지에 의한 또 다른 피해는 편집위원 초빙이다. 편집위원으로 참여해 달라는 요청에 확인 없이 참여한다면 가짜 학술지를 돕는 역할을 하게 된다. 가짜 학술지가 국제 DB 등재를 신청하면서 업적이 훌륭한 연구자가 편집위원으로 있다고 제시할 뿐 아니라 논문 투고를 요청하거나 또 다른 편집위원을 초빙하면서 기존의 편집위원 명단을 내세워 연구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가짜 학술지임을 알고 편집위원에서 빠지겠다고 연락하여도 가짜 학술지는 선뜻 정리하지 않는 것이 이러한 이유이다.
2. 가짜 학술지 피해의 방지 방안
그렇다면 연구자들이 약탈적 학술지와 정규 학술지를 구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투고 대상 학술지가 Table 1에 열거된 특징이 있으면 약탈적 학술지로 의심할 수 있다. 또 투고 대상 학술지가 정규 학술지를 제시하는 Directory of Open Access Journals (DOAJ) 목록(white list)에 있고, 약탈적 학술지나 약탈적 출판사를 제시하는 Beall’s list (black list)에는 없으면 정규 학술지로 판단할 수 있다. DOAJ (https://doaj.org/)는 Infrastructure Services for Open Access가 운영하며 2018년 10월 현재 12,000여 종의 학술지를 포함한다. Beall’s list는 약탈적 학술지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미국 콜로라도 대학의 Jeffrey Beall이 2010년부터 2017년까지 운영한 블로그에 올린 가짜 학술지 명단이다. Beall’s list에 따르면 2017년 1,155곳의 약탈적 출판사가 약탈적 학술지를 출판하고 있고, 한 종의 학술지를 출판(stand-alone publisher)하는 약탈적 출판사는 1,297곳이라고 하였다. 더불어 생의약학 분야 학술지도 약탈적 학술지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경고하였다[11]. 이후 Cabells Scholarly Analytics에서 가짜 학술지인 black list와 정규 학술지인 white list를 포함하는 Cabell's list를 제공하고 있다[12].
이들 외에도 명망 있는 출판사의 웹사이트에는 초록과 중심단어를 입력하면 적합한 학술지를 추천해주는 기능이 있다. 더불어 일부 학회에서 제공하는 해당 분야 정규 학술지 명단(green list)에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DOAJ, Beall’s list와 Cabell’s list를 비롯한 여러 방법을 사용해도 정규 학술지와 가짜 학술지를 완벽하게 구별할 수는 없다. 국제 DB인 Scopus에 등재되어 있던 OMICS 출판사의 여러 학술지가 Beall’s list에도 포함되어 논란을 일으켰다가 2017년 결국 Scopus에서 탈락된 사실도 가짜 학술지 기준을 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반영한다[13]. 또 새로운 가짜 학술지가 계속 생겨나기 때문에 미처 black list에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서 Experimental & Clinical Cardiology 경우처럼 정규 학술지가 발간 주체가 바뀌면서 출판윤리를 지키지 않아 가짜 학술지로 의심되기도 한다[14]. 심지어는 DOAJ에 등재되지 않았는데도 등재되었다고 홍보하는 가짜 학술지도 있다[15].
그러므로 가장 확실한 것은 각 분야에서 연구자들이 선호하는, 잘 알려진 학술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런 학술지에 출판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다른 학술지를 고려한다면 Think Check Submit의 웹사이트(https://thinkchecksubmit/org/check)와 World Association of Medical Editors의 웹사이트(https://wame.org/)가 도움이 된다. Table 1의 약탈적 학술지 특성과 더불어 Think Check Submit 웹사이트가 제안하는 투고 전 확인 사항인 Table 2를 참고하기 바란다.
만약 약탈적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한 후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학술지 측에 논문 철회를 요청하여야 한다. 물론 약탈적 학술지는 논문을 쉽게 철회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다시 일정 기한을 정해서 논문 철회를 요청하고 그동안 회신이 없으면 다른 학술지에 투고한다고 공식 통보를 해야 한다. 그 이후 다른 정규 학술지에 투고하면서 동일 논문을 가짜 학술지에 투고한 적이 있으며 철회 요청하였다고 밝혀야 이중 투고라는 출판윤리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
3. 가짜 학술대회 특성
최근 가짜 학술대회에 대한 국내 언론 보도에서 한 해에 150여 학술대회를 개최한다고 홍보하는 World Academy of Science, Engineering and Technology (WASET)가 관련되어 있었다. 가짜 학술대회의 특징은 모든 초록을 심사 없이 수용하고 인문, 사회, 과학기술 분야 등 모든 분야 발표를 한 장소에서 진행한다. 따라서 학술대회 참석자 중 발표자를 제외하면 연구내용과 관련된 분야의 연구자가 거의 없으므로 연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학술대회에 참석하는 목적은 같은 분야 연구자들의 최신 연구를 파악하고 본인 연구에 대한 동료 평가와 조언을 받는 것인데, 가짜 학술대회에서는 참석자가 발표만 할 뿐 이런 기회가 없다. 언론 보도 이후 연구재단에서 국가 연구비로 WASET에 참석한 연구자들을 파악하고 있으며 가짜 학술지로 짐작하고서도 여러 번 참석한 연구자는 연구 활동에 일부 제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2018년 9월, 정규 학술대회인 European Congress of Immunology에서 가짜 등록 사이트가 연구자들을 유도하니 조심하라는 경고가 있었다. 이는 journal hijacker와 유사한 conference hijacker라 할 수 있다.
결 론
가짜 학술지와 가짜 학술대회에 의한 피해를 방지하는 법은 다음으로 제안한다. 첫째, 피해 대상은 주로 신진 연구자, 대학원생 등 비교적 논문 출판 경험이 적은 연구자들이다. 그러므로 소속 기관과 교수 및 선임 연구자들은 신진 연구자와 대학원생들에게 가짜 학술지와 가짜 학술대회의 실체와 피해를 정확하게 알리고 교육해야 한다. 예방이 최선이다.
둘째, 연구업적을 평가하고 연구비를 지원하는 대학과 연구비 기관이 업적 평가에 논문의 질적 평가를 포함하여야 한다. 논문 수에 비중을 두면 연구자들이 쉽게 출판되는 학술지에 출판할 수 있다. 우리나라 연구 평가 환경은 점차 질적 평가로 진행하고 있고, 연구자들이 국제 DB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으므로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셋째, 정규 학술지 편집인들이 가짜 학술지를 차단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규 학술지에 출판되는 논문이 가짜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자주 인용하면 피인용 빈도를 등재 조건의 중요한 지표로 삼는 국제 DB에 가짜 학술지가 등재될 수 있다. 학술지 편집인들은 가짜 학술지로 의심되는 논문이 인용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연구라는 힘든 과정을 거쳐서 얻은 결과물을 발표하는 학술지와 학술대회를 주의 깊게 골라야 하는 환경이 연구자들을 위축시킬까 우려된다. 실수로라도 가짜 학술지나 가짜 학술대회에 연구 내용을 발표하면 그동안 쌓아온 연구의 진실성이 의심받기 때문에 연구자로서는 타격이 크다. 그러나 연구자들이 이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지나치게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학술지나 학술대회라면 반드시 확인하는 등 상식범위 내에서 결정한다면 피해를 상당히 방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