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론
1. 정상 보행을 관장하는 신경계
정상적 보행을 위해 다음 3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첫째, 걸음걸이(locomotion)능력인데, 박자를 갖춘 발걸음을 시작하고 유지하는 능력을 말하며, 둘째, 자세(posture)인데, 직립자세와 균형의 유지(자세반사)는 직립보행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셋째, 상위 뇌기능인 환경 적응능력이 필요하다[4].
보행에 대한 생리적 측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보행은 주저함 없이 시작된다. 보행주기(gait cycle; 한쪽 다리의 뒤꿈치가 2번 연속적으로 땅에 닿는 사이에 걸리는 시간=2걸음[steps])는 보행리듬(단위시간당 걸음의 수), 보장(step length; 한 회의 전체 보행주기의 실제적인 길이, 즉 2걸음) 그리고 보폭(step width; 양측 발꿈치의 동선 사이의 거리, 대개 5-10 cm)에 의해서 특징지어진다. 착지는 발뒤꿈치로 한다. 각각의 양쪽 다리는 차례로 무게를 지지하는 다리(supporting leg, 발디딤주기[stance phase]; 대개 보행주기의 65%를 차지)와 나아가는 다리(advancing leg, 발휘둘림주기[swing phase]; 대개 보행주기의 35%를 차지)로써 기능을 한다. 전환기(shifting phase) 동안, 양쪽 발은 잠시 동안 지면에 붙어있게 된다(double-stance phase; 대개 stance phase의 25%를 차지). 몸의 무게중심이 걸음을 걸을 때마다 약간씩 옆쪽으로 이동되기 때문에, 상체에서는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약간의 보상적인 운동이 생긴다. 팔 젓기(arm swing)는 움직이는 다리의 반대쪽 손이 교대로 움직인다[5].
정상 보행을 위해서는 모든 신경계가 동원된다고 보아야 한다. 최근 보행에 대한 새로운 증거를 정리해보면, 박자를 갖춘 걸음을 발생시키는 보행패턴 발생장치는 척수에 존재하고, 걸음걸이에 필요한 자동적 운동과 수의적 운동을 통합하는 곳이 전두엽에 존재하고 있다[6,7]. 또한 기능 뇌 자기공명영상(magnetic resonance imaging, MRI) 연구에서, 뛰는 상태에서는 척수 보행패턴발생기(pattern generator)와 소뇌가 주로 작동하고, 서서히 걸을 때는 공간 네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해마주변부(parahipocampus)의 활성이 증가됨이 알려졌다[8]. 과거에 보행은 자동 과정이라 고위 뇌기능이 거의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으나, 지난 10년간의 연구는 뇌고위기능이 일상 보행에 중요함이 알려지게 되었다. 즉, 정상적 보행을 위해서는 최선의 길을 계획하고, 신체 내외부의 환경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상 보행의 효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감각운동신경계의 역할뿐만 아니라 인지 영역의 집행능력(행동 결정과 통합능력)과 인식능력(공간인식력과 주의력) 그리고 감정 영역(기분, 조심스러움, 위험감당)까지 동원되어야 한다[4].
2. 뇌고위기능의 역할
뇌고위기능이 노인의 보행에 중요함을 보여 주는 몇 가지를 살펴보면, 우선 Lundin-Olsson 등은 걷는 도중에 말을 걸면 보행을 멈추는 현상에 대해 관찰하였다[9]. 두 가지 역할 수행 과제(dual task)가 주어질 때(걷는다와 대화한다), 질병이 있거나 약물을 복용하는 노인의 경우 인지능력과 보행을 통합하는 능력이 떨어져 걸음이 늦어지거나, 보폭을 일정하게 내딛지 못하였다. 이러한 현상을 보이는 노인의 경우 낙상의 위험이 높았으며, 파킨슨병이나 뇌졸중 환자들의 보행장애가 더 악화되었다[9]. 또 다른 예로 노인 보행의 경우, 일단 똑바로 서고 그다음에 안전하게 걷는 보행전략이 감소되어 있다[10]. 특히 치매 환자의 경우 전두엽 집행능력의 감소로 인해 이러한 안전 보행전략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낙상의 위험이 증가된다는 것이다[11]. 또한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있는 노인의 보폭이 일정하지 못하여, 정서적 요인도 보행에 관여됨을 알 수 있다[12].
3. 고령과 보행이상
노인이 되면 빠르게 일어날 수 없으며, 구부정하게 걷고, 양발을 넓게 걸어 넘어질 위험성이 높다. 노인이 보행을 할 때는 활력이 떨어지고, 머뭇거릴 수 있으며, 돌아설 때는 마치 통나무가 도는듯한 모양(en bloc)을 보인다. 이러한 노인의 보행형태가 정상 보행과 다르기 때문에 본태성 노인 보행장애(essential senile gait disorder)라는 개념으로 발전하게 된다[13]. 과연 이러한 현상은 나이들어 피할 수 없는 것인가?
4. 보행장애의 유형(Table)
진통성 보행(antalgic gait)은 절룩거림과 보폭의 감소가 주된 현상이며 이는 통증에 의해 관절운동이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마비 보행(paretic gait)은 발처짐보행(steppage gait)이나 오리걸음(waddling gait)이 주된 현상이며, 말초신경마비나 근육위축에 의해 발생한다. 경직보행(spastic gait)은 다리휘저음(leg circumduction)과 신발의 안쪽이 닳는 현상을 보이며, 추체로의 병변에 의해 발생한다. 전정보행(vestibular gait)은 몸이 한쪽으로 쏠리는 양상이 눈을 감으면 더 심해지는 양상을 보이며, 안구진탕을 동반하기도 하고, 정전계의 이상에 의해 발생한다. 감각실조보행(sensory ataxia gait)은 소뇌실조보행(cerebellar ataxia gait)과 비슷하게 휘청거리고 발을 옆으로 넓게 벌리는 양상을 보이나, 눈을 감으면 더 심해진다. 반면, 소뇌실조보행은 눈을 감아도 더 악화되지 않는다. 이상운동 보행은 발이나 다리의 불필요한 운동이 섞여 들어 있는 양상으로, 근긴장이상인 경우 특정 과업을 수행할 때 더 악화되며, 그 외에 코레아, 간대근경련등에 의해 발생한다. 운동감소-경직보행(hypokinetic- rigid gait)은 서동, 짧은 보폭, 경직 및 발을 질질 끄는 보행을 보이며, 특정 자극을 주면 호전되고, 이중자극을 주면 악화되며, 전두엽장애, 정상압뇌수종 및 파킨슨병증에서 관찰된다. 조심보행(cautious gait)은 마치 얼음판 위를 걷는 듯 조심스럽고 느리고 짧은 보폭을 보이나, 옆에서 조금만 도와주어도 보행이 좋아지고, 넘어지는 것에 대해 과도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조심성 없는 보행(careless gait)도 존재하는데, 병식이 없거나 전두엽 억제능력 감소에 의해 자세도 안 잡히면서 걸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며, 진행성 핵상마비나 치매 환자에서 관찰된다. 고위기능보행장애(higher level gait disorder)는 심한 자세 불안정, 넓은 보폭에 불규칙한 걸음, 주춤거림과 동결현상 등이 주요 소견이며, 누워서 발을 움직여보면 정상적이나 걸음에서만 이상을 보이고, 잦은 낙상, 우울증 및 전두엽기능장애 현상을 동반한다. 이외에 정신탓보행장애(psychogenic gait disorder) 및 약물에 의한 보행장애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4].
신경계를 중심으로 학자에 따라서는 상위, 중위, 하위 신경계 보행장애로 크게 나눈다. 상위신경계장애는 고위기능보행장애와 조심보행이, 중위신경계장애는 운동감소-경직보행, 소뇌실조보행, 경직보행이, 하위신경계장애로 진통성 보행, 마비보행 및 감각실조보행이 분류된다[15]. 그러나 노인에서는 여러 신경계를 함께 침범하는 경우가 많아 이러한 개념적 분류의 임상적 효용성은 크지 않다.
5. 보행장애의 평가
보행장애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경학적 검사이다. 방해받지 않는 곳에서 단지 걷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눈을 감게 하거나 감각자극을 주거나, 보행을 지지해주는 등의 시도가 필요하다. 여러 보행 및 자세 척도를 종합한 체계적인 평가법인 임상 보행 및 균형 척도(clinical gait and balance scale)가 2004년에 발표되어 있다[18]. 그러나 여러 평가를 집대성한 모습을 보여 평가문항이 많아 연구용으로는 적합하나, 우리나라 임상실제에서 사용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자세를 보기 위한 간단한 검사법으로는 뒤로 당기기검사(pull test)가 있다. 환자의 뒤에 서서 갑자기 어깨를 잡아 당기는 검사법으로, 자세 불안정의 정도를 알 수 있다[19]. 당기는 힘이 주관적이기 때문에 최근에는 이 검사의 변형인 밀고 빠지기검사(push and release test)를 사용한다. 환자로 하여금 등 뒤로 기대게 하고, 뒤로 넘어지지 않게 밀고 있다가 미는 손의 힘을 갑자기 빼서 환자의 자세 불균형을 측정하는 방법이다[20].
걸음걸이를 평가하는 검사로는 ‘일어나서 갔다 오기’ 검사(timed up and go test)가 있다[21,22].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나서 3미터를 걷고 뒤돌아서 다시 제자리에 앉는 시간을 재며 관찰하는 검사이다. 검사 도중 넘어지거나, 검사수행에 14초 이상 걸리면 낙상의 위험이 많아 철저한 원인검사를 하여야 한다[23]. 단, 인지기능이 감소된 환자는 지시에 대한 과업 수행이 안 되어 검사를 하는 데 제약점이 있다.
보행분석기를 포함한 다양한 보행검사장치가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으나, 그 환경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원인질환을 밝히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의 웨어러블기기의 발전은 실생활에서의 보행분석을 반영하고 있어 이에 대한 임상적 고려를 할 시점이다.
보행장애는 진단명이 아니다. 따라서 보행장애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4]. 1단계로 보행장애의 유형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진단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보행 이상의 주 현상이 무엇인지, 그와 동반된 증상과 증후가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보행 및 자세검사에서 어떤 양상을 보이는지를 파악한다. 2단계는 MRI와 같은 영상검사, 약물(L-dopa)이나 척수배액 등의 치료 반응 그리고 질병의 경과관찰을 통해 질환진단에 접근하는 것이다. 3단계는 부검으로 이를 통해서만 확진이 가능할 것이다. 3단계까지의 접근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나, 1, 2단계를 거치면서 불필요한 검사를 줄이고, 교정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체계적 접근을 할 수 있다.
6. 파킨슨병에서의 인지기능과 보행
파킨슨병은 보행이상을 일으키는 가장 잘 알려진 질환이다. 파킨슨병은 도파민 신경계의 이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로 인한 서동, 강직 증상이 도파민성 약물 투여로 개선된다. 그러나 중요한 증상의 하나인 자세 혹은 보행이상은 도파민성 약물로 개선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파킨슨병의 보행에 관여하는 또 다른 원인을 찾아보아야 한다. 이러한 도파민 저항성 증상(dopamine-resistant symptoms)들이 pedunculopontine nucleus와 nucleus basalis of Meynert의 신경세포 소실로 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신경들의 중요 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24].
뇌에서 아세틸콜린은 3가지 주요 원천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선조체(striatum) 내에 존재하는 콜린성 사이신경세포(interneuron) 이다. 이 세포는 large aspiny neuron으로 선조체 내 신경의 1-2%를 차지하며, 선조체에 아세틸콜린을 공급한다[25]. 두 번째는 neucleus basalis of Meyner (nbM)로, 이곳에서 아세틸콜린을 뇌피질로 주로 공급한다[26]. 세 번째로는 peduculopontine nucleus (PPN)로, 이곳에서 아세틸콜린을 주로 시상으로 공급하며, 일부 선조체, 뇌줄기나 소뇌에 공급한다[27]. 파킨슨병에서는 nbM과 PPN의 변성이 주로 나타나며, 선조체 콜린성 신경계는 비교적 보전되어 있다. nbM의 변성은 인지기능의 이상과 관련이 깊다[28]. PPN의 변성은 보행 등의 운동기능과 연관되어 있고, 또한 수면주기 및 의식상태와 연관되어 파킨슨병 치매에서 나타나는 인지동요와 연관되어 있다[26]. 물론 다른 신경전달물질(노르아드레날린, 세로토닌)도 도파민과 아세틸콜린의 분비에 영향을 미친다[28]. 또한 뇌피질콜린 활동의 표식자인 아세탈콜린에스테라제(acetylcholine esterase, AChE)의 농도 또한 이들 영역에서 알츠하이머병보다 더 심하게 감소하였다[29]. 이러한 증거들을 바탕으로 파킨슨병에서 콜린성 신경계의 소실은 다양한 운동 및 비운동증상, 즉 인지기능장애, 우울증과 무감동(apathy), 보행장애 및 자세 불안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된다.
결 론
노인들의 낙상 발생을 높이는 요인은 다양하다. 노인들의 낙상 발생은 신체기능, 운동능력의 저하와 불안전한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낙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신경과 의사는 낙상의 원인 중 보행장애에 의한 낙상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이에 대한 전문가로서의 입지를 다져야 한다.
결국 보행장애가 노년에 미치는 영향을 정리하면, 보행장애는 결국 낙상을 야기하고, 낙상에 의해 골절이나 뇌손상을 입게 되고, 이러한 것은 더욱 가동성을 악화시키고, 결국에는 걷기를 무서워하고, 걸으려고 하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의존적 존재로 빠뜨리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게 된다. 때문에 보행장애를 보이는 것이 노인의 당연한 생리적 현상이 아님을 알아야 하며, 더욱 적극적으로 보행장애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또한 보행이라는 현상이 팔과 다리의 자동현상이 아니라 뇌의 고위기능과 밀접한 연관 관계를 가지고 있고, 신경계의 이상은 종국에 인지기능장애와 운동기능장애로 나타나기 때문에 인지기능 및 감정이 보행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보행장애에 대한 체계적 유형 분석과 진단이 노인질환을 전공하는 신경과 의사의 중요한 업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