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마제닐 투여 후 발생한 실어성 뇌전증지속상태
Aphasic Status Epilepticus after Flumazenil Inj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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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마제닐(flumazenil)은 벤조디아제핀(benzodiazepine)수용체의 대항제(antagonist)로 벤조디아제핀중독의 해독제로 사용된다. 부작용으로 발작과 심부정맥이 나타날 수 있다[1]. 플루마제닐 투여 후 부작용 발생에 관한 메타분석 결과는 발작은 주로 전신긴장간대발작 형태의 뇌전증지속상태임을 보고하고 있다[1-6]. 국내에서도 플루마제닐과 연관된 전신긴장간대발작은 보고가 되고 있으나 실어성 뇌전증지속상태가 보고된 예는 없었으며, 이와 관련된 임상 특징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7]. 저자들은 플루마제닐 투여 후 실어성 뇌전증지속상태를 보인 예를 경험하여 보고하고자 한다.
증 례
75세 왼손잡이 남자가 지속적인 졸림 및 혼돈 증세로 응급실에 왔다. 과거력에서 1년 전 외상성 거미막하 출혈 및 우측 측두엽내 출혈로 수술을 받았으며 당시 발견된 알코올성 간경변과 간세포종양으로 고주파 열치료 후 추적관찰 중이었다. 별다른 후유증 없이 스스로 일상생활이 가능하였으나 일주일전부터 불면증이 있어 이틀 동안 플루라제팜(flurazepam) 15 mg을 취침 전 복용하였다. 이후 갑자기 발생한 혼돈으로 응급조치 후 로라제팜(lorazepam) 2 mg을 복용하였다. 다음날 혼돈이 악화되며 지속적으로 자려고 하여 타과로 입원하였다. 의료진과의 간단한 대화는 가능하였으나 시간과 장소의 지남력이 떨어져 있었다. 혈액검사에서 아스파르테이트 아미노전이요소(AST) 77 IU/L(참고치 0-40 IU/L), 알라닌아미노전이요소(ALT) 90 IU/L(참고치 0-40 IU/L), 알칼리인산분해효소(ALP) 212 IU/L(참고치 42-128 IU/L), 감마-글루타밀전이효소(GGT) 484 IU/L(참고치 11-52 IU/L), 암모니아 139 μg/dL(참고치 0-86 μg/dL)로 상승되어 있어 의식저하의 원인을 간성뇌증으로 판단하였다.
저단백식이와 락툴로우스(lactulose) 관장 시행 후 입원 2일째 암모니아는 76 μg/dL로 정상화되었지만 의식 호전은 없었다. 증상 발생 3일째 벤조디아제핀중독을 감별하기 위해 플루마제닐 0.5 mg을 투여하였다. 투여 12시간 후 의식은 명료해졌으나 의료진의 묻는 말에 의미 없이 “응, 응” 또는 본인 이름을 반복하여 말하였고 본인의 이름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이름, 이름”이라고 하며 질문한 문장의 내용 중 일부 단어를 반복해서 말하기도 하였다. 구음장애는 없었으나 제대로 된 언어 소통이 불가능하였다. 따라말하기검사에서 한 단어 정도는 가능하였으나 문장은 따라 말할 수 없었고, 간단한 단어의 읽기, 쓰기도 불가능하였다. 언어장애 발생 12시간 후 시행한 뇌자기공명영상의 뇌확산강조영상(diffusion weighted image, DWI)과 액체감쇠역전회복영상(fluid-attenuated inversion recovering imaging, FLAIR)에서 우측 뇌섬엽(insular cortex) 부위에 고신호 강도가 관찰되었고, 겉보기확산계수(apparent diffusion coefficient, ADC) 영상에서도 고신호 강도가 관찰되었다(Fig. A). 언어장애 발생 14시간 후 시행한 뇌파검사에서는 우측 전측두부에 빠른 주기성 뇌전증모양방전(epileptiform discharge)과 율동파가 관찰되었다(Fig. C). 환자는 같은 날 신경과로 전과된 후 카바마제핀(Carmazepine-CR Tab. 200mg, Myung In Pharm, Seoul, Korea) 400 mg/일을 투여 받았으며 이후 이름대기 외의 언어기능들부터 먼저 호전되기 시작하였고 언어장애 발생 7일째 시행한 한국판간이정신상태검사에서 19점(초등학교 졸업, 시간 및 장소 지남력 -4점, 주의 집중 및 계산 -5점, 이름대기 -2점), 단축형한국판수정된보스톤이름대기검사에서 4점이었다. 그러나 묻는 문장의 일부 단어를 반복적으로 따라 말하는 증상은 남아 있었으며, 추적 시행한 뇌파검사에서 우측 전측두부에 주기성 뇌전증모양방전이 지속적으로 관찰되었다(Fig. D). 따라서 점진적으로 항뇌전증약을 추가하여 카바마제핀(Carmazepine-CR Tab. 200mg, Myung In Pharm, Seoul, Korea) 400 mg/일, 페노바르비탈(Phenobarbital 30mg, Hana Pharm Co., Soudl, Korea) 30 mg/일, 레베티라세탐(Keppra Tab. 1000mg, UCB Pharma S.A., Brussels, Belgium) 3000 mg/일 및 프레가발린(Lyrica Cap. 75mg, Jeil Pharmaceutical Co., Seoul, Korea) 75 mg/일을 투여하며 경과를 관찰하였다.
치료 2개월 때 추적한 뇌자기공명영상의 뇌확산강조영상, 액체감쇠역전회복영상 및 겉보기확산계수영상에서 고신호 강도가 사라졌으며(Fig. B), 치료 3개월에 시행한 뇌파에서도 발작기파 및 주기성 예파가 사라졌음을 확인하였다(Fig. E). 환자는 치료 3개월 째 이름대기를 포함한 언어기능 대부분이 회복되었으며 추적 시행한 한국판간이정신상태검사에서 23점(시간 및 장소 지남력 -3점, 주의집중 및 계산 -4점)으로 발병 이전의 상태로 호전되어 퇴원하였다.
고 찰
플루마제닐은 1,4-이미다조벤조디아제핀(imidazobenzodiazepine)에서 파생된 것으로 벤조디아제핀의 GABAA수용체에 경쟁적으로 결합하여[4] 벤조디아제핀중독으로 인한 의식저하 및 호흡부전이 빠르게 회복될 수 있도록 한다[2]. 경련은 플루마제닐의 잘 알려진 심각한 부작용 중 하나이나, 플루마제닐 투여 후 발생하는 뇌전증이 플루마제닐에 의한 직접적인 독성효과인지 아니면 벤조디아제핀의 항뇌전증효과의 저하로 인한 반동 작용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1]. 그러나 플루마제닐 투여 후 발작이 나타나면 즉각적인 항뇌전증약 투여를 통해 치료를 시작해야 뇌 손상을 줄일 수 있다.
본 증례는 알코올성 간경변과 간종양이 있어 벤조디아제핀 투약 후 발생한 의식저하가 간성뇌증 또는 벤조디아제핀중독에 의한 것인지 감별이 어려웠다. 플루마제닐 투여 전 발생한 의식저하가 이미 뇌전증과 관련되었음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이 시기의 환자는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하였고 실어증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뇌전증에 의해 의식변화가 있었을 가능성은 낮다.
이전 보고에서는 삼환계항우울제나 프로폭시펜(propoxyphene)을 복용하고 있는 환자에서 플루마제닐 투여 후 뇌전증 발생 빈도가 더 높았으며, 이 경우 전신경련(generalized convulsive seizure)이 없는 소발작(absence) 뇌전증지속상태로 나타나기도 하였다[1-3,5-7]. 본 환자의 경우, 위와 같은 약물의 복용력이 없으며, 의식소실 없이 실어증만 관찰되는 매우 특이한 임상상을 보였다. 플루마제닐에 의해 발작의 문턱이 낮아져, 기존의 외상성 뇌병변에서 부분발작이 기인하여 우측 뇌섬엽부위로 확산되어 지속적 언어장애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뇌확산강조영상, 액체감쇠역전회복영상 및 겉보기확산계수영상에서 고신호 강도가 나타난 것은 뇌전증지속상태에 의한 변화로 보이고, 이는 치료 후 소실되었다.
플루마제닐에 의한 뇌전증은 주로 발작성 뇌전증지속상태(convulsive status)로 보고되고 있으나, 본 증례처럼 매우 드물지만 실어성 뇌전증지속상태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가능성을 의심하지 못하면 치료가 지연되어 신경학적인 후유 장애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MRI 및 뇌파를 통한 빠른 진단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