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실행증(apraxia of speech)은 말을 계획하고, 발화를 프로그래밍하는 능력의 장애를 특징으로 하는 질환으로 운동언어장애(motor speech disorder)라는 점에서 실어증(aphasia)이나 구음장애(dysarthria)와는 구분된다[
1]. 언어실행증은 1861년 Paul Broca에 의해 운동실어증(aphemia)으로 기술된 이후 혀입술인두실행증(apraxia of the glosso-labio-pharyngeal structures) 및 언어실행증으로 정립되었다. 처음에는 좌측 대뇌반구의 구조병변이 있었던 환자에서 기술되었지만[
1], 이후 퇴행성 뇌질환의 초기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되었다. 이 경우 무언증(mutism)까지도 진행하며, 흔하게 실어증이 병발한다[
2].
국내에서는 언어실행증으로 시작하여 전두측두엽치매로 진행하는 환자에 대한 보고가 1예 있었고 그 환자는 뚜렷한 운동장애는 없었다[
3]. 저자들은 언어실행증으로 시작되어 편측 무운동경축(akinetic rigidity)이 나타나고 추후 피질기저핵증후군(corticobasal syndrome)에 합당한 운동이상이 나타난 증례를 경험하여 보고하고자 한다.
증 례
오른손잡이인 64세 여자가 1년 전부터 서서히 말이 어둔해짐을 느껴서 왔다. 환자는 말을 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거나 읽고 쓰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기억력을 포함한 다른 인지기능의 저하는 호소하지 않았다. 처음 증상이 발생하였을 때에는 일상생활을 수행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었으나 말의 장애가 발생한 지 1년 후부터 오른쪽 손의 움직임이 둔하고 느려졌으며 글씨를 쓰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언어 검사에서 발음의 왜곡(distortion)이 심하였고, 말의 시작이 지연되고 발화의 속도가 느렸으며, 음절과 음절 사이에서 말을 멈추는 양상을 보였다. 발음하기 전에 먼저 입술로 입모양을 만들어 보는 음의 탐색행동(groping)을 여러 번 보였으며, 발화시 음의 왜곡과 오류를 인식하고 수정하려는 노력이 자주 관찰되었다. 단음절반복과제를 시켰을 때도 부정확한 발음을 보였다. 따라 말하기와 읽기에서도 비슷한 발화 양상이었지만 언어내용은 정상이었고, 쓰기도 정상이었다. 구강얼굴실행증은 없었다. 신경학적 진찰에서 우측 상지의 심한 운동완만과 경축(rigidity)이 있었다. 상하지의 근력은 모두 정상이었고 근위축은 없었으며, 걸음걸이는 정상이었고, 우측 상하지에서 심부건반사가 항진되어 있었으나 병적과다반사와 강직(spasticity)은 없었다. 빨기반사, 미간반사, 입술반사와 같은 전두엽유리징후도 없었다. 안구운동장애는 없었고 소뇌기능은 정상이었다.
증상발현 2년 후에는 우측 상지의 경축이 더 심해졌고 삼킴 곤란이 경미하게 나타났다. 증상발현 3년 후에는 알약을 삼키는 것이 어려워졌고 언어실행증은 더 악화되어 말의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졌고, 발음을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왜곡이 심해졌다. 또한, 이 시기부터 다리가 끌리며 보폭이 좁아졌으나 가속보행이나 자세불안정을 보이지는 않았다. 당시 측정한 통합파킨슨병척도 운동(part III) 점수는 총 16점이었고 Hoehn-Yahr 척도는 1.5점이었다. 증상 발현 5년 후 환자는 보행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고 양측 다리가 끌리고, 자세불안정이 있어 자주 넘어졌으며, 전반적인 운동완만도 심해졌다. 이 당시 측정한 통합파킨슨병척도 운동점수는 28점이었고 Hoehn-Yahr 척도는 3점이었다. 증상발현 7년 후에는 발화가 불가능해졌고, 보행 및 균형장애가 모두 현저히 악화되었으며, 증상발현 8년 후에는 휠체어에 의존하게 되었고, Hoehn-Yahr 척도는 5점으로 진행하였다(
Table). 레보도파치료에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수면 중 소리를 지르거나 과격한 행동을 하는 등 렘수면행동장애를 시사하는 증상은 없었고, 자율신경계부전을 시사하는 증상은 없었다. 심부건반사의 항진과 진행하는 언어실행증 및 구음장애 때문에 운동신경세포질환의 병발을 감별하기 위해서 신경전도검사 및 침근전도검사를 증상발현 2년째부터 7년째까지 총 3차례 반복 시행하였으나, 그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다.
증상발현으로부터 1년과 5년 후에 뇌자기공명영상검사를 시행하였고 초기 영상검사에서는 명확하지 않았으나 증상발현 5년 후 시행한 검사에서는 전운동영역(premotor area)과 보조운동영역(supplementary motor area)의 비대칭위축이 보였다(
Fig. 1A). 증상발현 3년 후 시행한
18F-N-(3-[
18F] fluoropropyl)-2β-carbomethoxy-3β-(4-iodophenyl) nortropane ([
18F] FP-CIT) 양전자방출단층촬영(positron emission tomography)영상은 정상이었다(
Fig. 1B).
18F-fluorodeoxyglucose 양전자방출단층촬영영상에서 비대칭적으로 좌측 전운동영역 및 보조운동영역에서 결합능이 감소되어 있었으며 이는 statistical parametric mapping (SPM) 기법을 이용하여 정상대조군과 비교한 정량분석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Fig. 1C,
D). 이 환자에서 확인된 이상영역과 이전 언어실행증 환자에서의 뇌자기공명영상과
18F-fluorodeoxyglucose 양전자방출단층촬영영상에서 보고된 영역[
2,
4,
5]을 비교하였을 때에도 뇌위축과 대사저하가 있는 부위가 일치하였다(
Fig. 2).
고 찰
환자의 최초 발화양상은 언어실행증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이전 문헌에서 보고된 언어실행증의 특징적인 소견과 잘 맞았다[
2]. 발성부전(hypophonia)과 과다한 콧소리보다는 현저한 속도저하와 분절화 및 음성의 왜곡이 두드러졌으므로 환자의 증상은 구음장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또 음의 왜곡과 현저하게 느린 발화속도를 보이며 운율에 문제가 있어도 착어증(paraphasia)은 없었고, 말을 이해하는 능력이 정상이었고 명령수행도 정상적으로 가능하였으며 따라 말하기와 읽기에서 언어 내용은 정상이었고, 쓰기는 정상이었기 때문에, 환자의 증상은 실어증만으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이후 환자는 레보도파에 전혀 반응이 없는 일측경축 및 운동 완만과 함께 자세불안정과 보행장애로 비교적 빨리 진행하였고, 자율신경계이상 및 소뇌운동실조는 없었다는 점에서 임상적으로는 피질기저핵증후군(corticobasal syndrome)에 가장 합당하였다. 즉, 본 증례는 언어실행증으로 시작된 편측 무운동경축증후군으로 피질기저핵증후군에 합당한 신경학계증상을 보인 예이다.
문헌에 보고된 언어실행증 환자들은 대부분 전두측두엽변성을 보이는 알려진 신경퇴행질환으로 진행하였다. 원발진행실어증, 전두측두엽치매(frontotemporal dementia), 근위축측삭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그리고 진행핵상마비(progressive supranuclear palsy)가 보고된 바 있다[
2,
4]. 또한 일부 피질기저핵증후군과 같은 증상을 나타낸 환자에 대한 드문 보고가 있다. 한편, 언어실행증을 보였던 11명의 환자를 평균 8년간 추적관찰 후 병리 소견을 보고하였던 한 연구에 의하면 언어실행증이 타우단백이상을 보이는 신경퇴행질환(tauopathy)의 초기 징후였다고 한다[
6].
2012년에 오른손잡이 환자에서 언어실행증이 좌측의 피질기저핵증후군으로 진행하는 증례가 보고되었으며, 여기서는 우측 두정엽의 대사저하와 연관이 되었다[
7]. 또한 이 증례보고에서는 언어실행증의 임상증상이 말초실서증과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하였는데 이러한 말초실서증의 경우에는 우성 반구, 즉 오른손잡이 환자에서는 좌측 대뇌반구의 이상과 연관이 있다. 즉 이 증례보고에서는 교차언어실행증에 대하여 보고하였다. 2015년에도 언어실행증으로 시작하여 피질기저핵증후군의 양상을 나타낸 증례가 있었다[
8]. 이 증례에서는
MAPT 유전자의 이상으로 인한 가족일차언어실행증이었으며 본 증례와 같은 산발증례는 아니었다. 또한, 본 증례는 레보도파치료에 반응이 없고 도파민운반체영상이 정상이었으므로, 언어실행증으로 시작된 피질기저핵증후군에서 파킨슨증은 도파민 경로의 이상과 무관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추가적인 보고가치가 있다. 본 증례에서 보인 파킨슨증은 전운동영역과 보조운동영역의 위축과 연관된 전두엽피질-기저핵회로의 기능이상에 기인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를 입증하기 위해선 추가연구가 필요하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피질기저핵증후군에서 무운동경축운동이상의 정도와 편측성은 도파민운반체영상의 이상유무 및 정도와 관련이 없었고, 해당 환자들에서 도파민운반체영상은 정상이거나 동측 반구에 떨어진 경우도 많았다[
9]. 따라서, 피질기저핵증후군에서의 레보도파에 반응하지 않는 일측성 무운동경축증후군은 임상적으로 도파민결핍에 의해 발생하는 경축과 무운동증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언어실행증에 관한 기존 문헌에 의하면, 뇌경색에 동반된 언어실행증의 경우 앞섬엽(anterior insula) 혹은 좌측 뒤쪽아래전두이랑(posterior inferior frontal gyrus)의 병변과 관련된다는 보고가 있고[
10], 구조이상이 없으며 실어증이나 다른 신경계증상이 없는 원발진행언어실행증(primary progressive apraxia of speech) 환자에서는 보조운동영역과 외전운동영역(lateral premotor area)의 이상이 보고된 바 있다[
2]. 또한, 언어실행증의 중등도는 외전운동영역이 보조운동영역보다 연관이 있다고 한다[
5]. 문헌에서 일차신경퇴행질환에서 언어실행증과 연관된 이상영역으로 보고된 바와 같이, 본 증례 환자에서도 다른 영역에는 이상이 뚜렷하지 않을 시기에 전운동영역과 보조운동영역에서만 뇌위축과 뇌대사능의 저하가 보였다. 한편, 원발진행언어실행증(primary progressive apraxia of speech)으로 진단된 환자들과[
2] 언어실행증과 비문법실어증(agrammatic aphasia)을 동시에 나타내지만 언어실행증이 실어증보다 더 두드러진 전반언어실행증(dominant apraxia of speech) 환자들의 임상양상과 뇌영상을 비교한 연구에 의하면, 전반언어실행증에서는 좌측 전두엽과 섬엽이 포함되기는 했지만, 원발진행언어실행증과 전반언어실행증 모두 공통적으로 전운동영역 및 보조운동영역 중심의 이상이 두드러졌다(
Fig. 2B)[
4]. 즉, 신경퇴행질환에서 언어실행증이 있다면, 전운동영역과 보조운동영역의 국소퇴행과 연관된다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언어실행증으로 시작하여 피질기저핵증후군으로 진행한 증례를 처음으로 보고하며, 뇌영상에서 언어실행증의 연관영역으로 알려진 전운동영역 및 보조운동영역의 퇴행을 제시하였다. 추후 언어실행증으로 발현하는 신경퇴행질환에 대한 영상분석과 병리진단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