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역뇌혈관수축증후군(reversible cerebral vasoconstriction syndrome, RCVS)은 광범위한 뇌혈관수축과 함께 벼락두통(thunderclap headache)이 특징적인 임상증상이다. 그 외 주요 증상으로 구역, 두통, 빛공포증, 소리공포증이 있으며, 대개 저절로 호전되는 경과를 보이나, 신경학적 결손을 야기하는 비동맥류성 거미막하출혈, 허혈 뇌졸중 또는 뇌내출혈이 동반될 수 있다[
1,
2]. RCVS는 남성보다 여성에서 호발하며, 특발성으로 일어나거나 유발인자에 의해 이차적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혈관수축을 유발하는 약들과 분만 후(postpartum)가 대표적인 관련인자로 알려져 있으며 그 외 다양한 약과 유발 물질에 관한 보고가 있다[
3]. 저자들은 의료기구 소독용으로 많이 사용되는 에틸렌옥사이드(ethylene oxide) 가스 노출 이후 발생한 RCVS 증례를 경험하였기에 보고한다.
증 례
34세 여자가 두통과 함께 운동실어증, 구음장애, 우측 상지의 위약으로 입원하였다. 과거력, 가족력, 약물 복용력에 특이 사항은 없었고, 이전 두통의 병력이나 임신 가능성은 없었다. 산부인과 의원에서 일했고, 내원 17일 전 에틸렌옥사이드 가스를 이용하여 수술기구를 소독하던 도중 5분가량 가스에 노출되었으며 노출 직후 갑작스런 벼락두통(visual analog scale: 10)이 발생하였다. 두통은 악화를 완화를 반복하면서 지속되었고, 심한 두통은 1-2시간 가량 유지되었다. 증상 발생 당일 타 병원에서 촬영한 뇌CT와 CT혈관 조영술(CT angiography)은 정상이었다(
Fig. 1A,
B). 진통제를 처방 받아 퇴원하였으나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이후 두통은 지속되었고, 노출 1주일 뒤 운동실어증, 구음장애, 우측 상지의 위약이 발생하여 외래 방문 뒤 입원하였다. 입원 당일 촬영한 확산강조영상(diffusion-weighted image)에서 좌측 측두부, 두정엽 뇌실 주위와 피질하 부위, 좌측 뇌섬엽하 부위와 좌측 두정엽 피질하 부위에서 다발성 고신호강도병변이 있었고(
Fig. 2A), 이런 병변들은 겉보기확산계수(apparent diffusion coefficient)영상에서 저음영으로 보였다. 이후 촬영한 CT혈관조영술에서 좌측 중대뇌동맥 근위부에 심한 협착과 우측 중대뇌동맥, 좌측 침대돌기위(supraclinoid) 내경동맥, 양측 전대뇌동맥, 우측 후대뇌동맥과 기저동맥에서 협착이 있었다(
Fig. 2B). 전체혈구계산, 일반화학검사, 요검사, 혈당검사, 적혈구침강속도, 갑상선기능검사, 비타민B12, 엽산, 호모시스테인, 항핵항체 그리고 뇌척수액검사는 모두 정상이었다. 니모디핀(nimodipine)을 30 mg 하루 두 번 투약하면서 두통이 점차 호전되었으나, 입원 일주일째 촬영한 고식적뇌혈관조영술(conventional angiography)에서 이전에 쵤영한 CT혈관조영술과 비교하여 다발혈관협착은 일부 호전되었으나 여전히 좌측 중대뇌동맥에 협착이 있었다. 니모디핀을 60 mg 하루 두 번으로 증량하여 투약하였고 이후 두통과 신경학적 증상은 호전되어 퇴원하였다. 퇴원 2개월 뒤 촬영한 CT혈관조영술에서 이전에 있었던 혈관협착은 모두 호전되었으며(
Fig. 3) 두통도 없었다. 그러나, 언어장애가 일부 남아있었다.
고 찰
RCVS는 드물고 최근까지도 기전이 잘 밝혀지지 않은 증후군이지만, 유발인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가 알려져 있다. 절반 이상의 환자에서 증상 발생 이전, 혈관수축을 유발할 수 있는 약물을 사용했거나 분만 후에 발생한다[
3]. RCVS를 유발할 수 있는 가장 흔한 약물로는 세로토닌계약물, 아드레날린계약물 그리고 대마초 등이 알려져 있다[
3]. 지금까지 RCVS의 유발물질로써 에틸렌옥사이드 가스는 보고된 적이 없다. 에틸렌옥사이드 가스는 주로 병의원에서 의료기기를 소독할 때 사용되며, 알킬화약물로 자극성, 민감성, 마약성 효과가 있으며, 만성 노출의 경우 돌연변이를 유발할 수 있다[
4]. International Agency for Research on Cancer (IARC)에서는 에틸렌옥사이드 가스를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5]. 급성중독의 경우 다양한 증상을 나타낼 수 있으며 특히 중추신경계 증상이 주로 나타난다. 두통과 구역, 구토뿐 아니라 말초신경병증, 눈과 손의 협동능력 장애와 기억력 저하를 최근 연구들이 보고하였다[
6]. 본 증례의 경우, RCVS를 유발할 만한 약물에 노출된 병력이 없고, 분만과 관련이 없으며, 에틸렌옥사이드 가스에 노출된 직후 심한 두통이 생겼고 이후 두통이 지속되며 신경학적 증상이 동반되어 에틸렌옥사이드 가스가 RCVS의 유발 인자로 추정된다.
RCVS 환자에서 벼락두통과 혈관수축 사이의 시간적인 선후관계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일반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발생할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3]. 본 증례의 경우, 벼락두통이 발생했을 당시 혈관영상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으나, 증상 발생 일주일 뒤, 신경학적 이상이 동반되었을 때에는 혈관영상에서 다발혈관협착이 보였다. 본 증례를 통해, RCVS에서 두통이 먼저 발생하고 이후 수일 이내 혈관수축이 발생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특정 약물 노출이나 분만 직후처럼, RCVS가 생길 수 있는 상황에서 심한 두통이 생긴 경우 처음 혈관영상에서 이상이 보이지 않더라도, 추적영상에서 이상이 보일 수 있으므로 두통이 호전되지 않을 경우 추적영상을 꼭 고려해야 함을 시사한다. 대부분의 RCVS 환자는 특별한 합병증없이 회복되는 경우가 많으나, 약 12-81%에서 거미막하출혈이나 뇌경색과 같은 합병증을 동반하고[
3], 본 증례와 같이 신경학적결손이 장기적으로 남을 수 있으므로, 의심을 하고 추적관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에틸렌옥사이드 가스는 의료현장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어, 언제든지 가스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 본 증례를 통해 에틸렌옥사이드 가스가 RCVS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특히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이전에 경험한 적이 없는 심한 두통을 호소할 경우 에틸렌옥사이드 가스로 인한 RCVS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