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뇌전증(epilepsy)은 다양한 원인과 증상이 복합되어 나타나는 혼합 질병군으로 진단, 치료 그리고 예후가 복잡하다. 뇌전증의 정의와 분류는 진단의 기본적인 골격이 되며 치료법을 결정하고 예후를 예측하는데 중요하기 때문에, 국제뇌전증퇴치연맹(International League Against Epilepsy: ILAE)에서는 뇌전증의 분류와 용어에 대한 특별위원회(commission on the classification and terminology)를 두고 이 분야의 발전과 정립을 위한 많은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뇌전증의 분류는 크게 뇌전증 또는 뇌전증증후군과 뇌전증발작(epileptic seizure)에 대한 분류법이 있으며, 1964년 Henri Gastaut 등[1]이 제안한 지침서가 현대 분류법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뇌전증발작의 국제분류법은 1981년 ILAE가 수정하였고[2] 현재까지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다. 1993년 ILAE [3]는 뇌전증을 ‘뇌세포의 비정상적이고 과도한 흥분 때문에 생기는 임상양상’으로 정의하였으며, 뇌전증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비유발발작이 2회 이상 재발하는 경우’로 규정하고 24시간 이내에 반복되는 발작은 모두 일 회(single)발작으로 규정하였다. 2005년에는 ILAE와 국제뇌전증기구(International Bureau of Epilepsy: IBE)에서 공동으로 뇌전증의 개념에 대한 정의(conceptual definition)를 새로 제안하였는데[4], 뇌전증발작을 ‘뇌신경세포의 과도하고 동시에 발생(synchronous)한 활동에 의하여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증상 또는 징후’라고 하였고, 뇌전증은 ‘뇌전증발작을 일으키는 성향이 지속되고 있는 상태’라고 정의하면서, ‘발작이 한 번만 있어도 이러한 성향이 있다면 뇌전증으로 진단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Table 1). 이러한 개념적인 뇌전증의 정의는 발작이 한 번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발작이 재발할 확률이 이미 2회 이상의 발작이 있었던 경우와 동등하거나 또는 더 높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한 것으로, 의사의 판단에 의하여 발작이 한 번만 있어도 환자라 하더라도 뇌전증으로 진단하고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고 하였고 이는 전세계적으로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2005년의 개념적인 정의는 임상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발작 재발의 성향과 확률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단순히 ‘발작의 재발 성향이 지속되는 상태’가 존재하는 경우라고 하여, 실제로 어떠한 사례나 경우가 이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이에, ILAE에서는 새로운 팀을 조직하여, 학계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청취하고 전문의의 제언에 따라 운용하기 쉽고 실제 임상에서 적용할 수 있는 뇌전증의 실제적인 정의(practical definition)를 2014년에 제안하였다(Table 2)[5]. 본 원고에서는 뇌전증의 새롭고 실제적인 정의와 의미를 문헌고찰과 함께 알아보고, 예상되는 장단점과 실제 임상 적용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본 론
1. 뇌전증에 관한 운용적인 정의(operational definition)
2014년에 발표한 ILAE의 뇌전증에 대한 실제적인 정의는[5] 1) 24시간 이상 시간 간격을 두고 나타나는 두 번의 비유발발작이 있는 경우, 2) 한 번의 비유발(또는 반사)발작 후에 재발 가능성이 최소 60% 이상인 경우, 3) 뇌전증증후군으로 진단한 경우의 세 가지의 상황으로 제안하였다. 항목1)은 Hauser가 1991년 발표한 역학보고에 따르면 연구에서 운용할 수 있는 정의로 사용한 이후로 전혀 이견없이 활용되는 정의이다. 항목2)는 2005년 개념적인 정의에서 “비유발발작이 한 번 있은 후 발작을 일으키는 성향이 지속되는 것”이라는 모호함을 보완하기 위해서 도입한 새로운 정의이다. 항목3)은 뇌전증증후군으로 진단된 경우이면, 발작의 유무나 재발 여부에 관계없이 뇌전증으로 진단하자는 것이다.
또한 이 운용적인 정의는, 뇌전증 치료 후 장기간 발작이 없는 환자에서 치료를 종결하거나 또는 뇌전증 진단을 철회할 수 있는 기준을 제안하기 위하여 뇌전증 치료완결(resolved)이라는 진단을 새롭게 제시하였다. 이에 대한 예시로 1) 연령-의존 뇌전증에서 적용 나이가 경과한 경우(예, 20세가 지나고 오랫동안 발작이 없는 양성롤란도뇌전증 환자), 2) 최근 10년 동안 발작이 없었고 최근 5년은 약물치료를 하지 않은 경우로 제안하였다.
뇌전증은 전통적으로 단일질병보다는 많은 다른 질병과 상태를 포함하는 질병군으로 장애 또는 장애부류로 생각하였다. “장애(disorder)”란 단어는 일시적인 기능이상을 의미하므로, 장시간 신체 기능이 비정상적인 상태를 뜻하는 “질병(disease)”과는 의미가 다르다. 즉 만성질환으로서 심각한 뇌전증의 본래 특성을 나타내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국제뇌전증퇴치연맹(ILAE)과 국제뇌전증기구(IBE)가 합의하여 뇌전증을 “질병”으로 정의하였다.
2. 두 번의 비유발발작의 의미
뇌전증의 정의에서 ‘두 번의 비유발발작’의 의미는 비유발발작의 재발률에 대한 역학연구에서 알 수 있다. 한 번의 비유발발작 있은 후 4년 동안 추적관찰기간에 두 번째 발작이 발생할 가능성은 33%(95% 신뢰구간 40-52%)이지만, 두 번째 발작 후 세 번째 발작의 가능성은 73% (95% 신뢰구간 59-87%.)이고 3회 이후 4회째 재발 가능성은 76%(95% 신뢰구간 60-90%)로 보고하였다[6]. 결론적으로 두 번의 비유발발작 후 세 번째 발작부터 재발률은 큰 변동없이 일정한 추세를 보이고, 이는 첫 번째 비유발발작 이후, 두 번째 발작의 재발률에 비해 확실히 높기 때문에, 2회 이상의 비유발발작이 있는 경우 뇌전증으로 진단하는 근거를 제시하였다.
뇌전증 진단을 위한 전제 조건인 비유발발작은 유발발작과 구별해야 한다. “유발발작”은 ‘정상 뇌에서 일시적인 요인에 의해서 발작문턱(seizure threshold)이 낮아져서 생기는 발작’을 말하며, 급성증상발작(acute symptomatic seizure) 또는 반응성(reactive) 발작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한다. “비유발”의 의미는 ‘뇌전증 환자의 뇌에서 지속적으로 발작문턱이 낮기 때문에 일시적이고 가역적인 유발요인 없이 발작을 일으킬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비유발발작에서 유발요인이 전혀 없다고 확신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잘 알려진 유발요인을 배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발요인은 발작이 일어나는 시점의 전신 질환이나 시간적으로 직접 영향을 준 뇌손상을 말하며 외상성 뇌손상, 뇌졸중, 중추신경계감염, 중추신경계신생물, 대사장애, 뇌저산소증, 음주, 약물 남용과 금단현상, 고열(섭씨 38.5도 이상)이 주요 요인이다[7]. 발작 원인이 두 개가 동시에 있을 때, 예를 들면 과거에 외상성 뇌손상이 있었고 최근에 급성 뇌경색이 생겨 발작이 있다면, 이는 급성증상발작으로 생각한다. 뇌전증의 원인과 유발요인이 같은 경우, 예를 들면 뇌졸중후 뇌전증에서 과거 원인은 뇌졸중이지만 뇌졸중 급성기에 급성증상발작이 있는 경우에는 시점에 따라 비유발발작과 다르다. 국제뇌전증퇴치연맹이 2011년에 발표한 급성증상성발작의 기준[8]을 참고하여 비유발발작의 시기를 결정하면 된다. 유발발작의 경우는 유발요인이 치유되거나 없어지면 발작이 재발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며, 발작의 재발성향이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뇌전증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실제로 유발발작과 비유발발작을 비교한 역학연구를 보면[9], 첫 발작 후에 10년 동안 재발위험성은 비유발발작의 경우 64.8%, 유발발작은 18.7%로 유발발작이 80% 정도 낮다. 반면에 30일 이내 사망률은 3.4%와 21.4%로 유발발작이 8.9배 높아서, 뇌전증 진단에 비유발발작만을 포함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반복적인 반사발작을 일으키는 광민감뇌전증은 광자극에 반응하여 나타나는 유발발작이지만 같은 자극에 의해 반복적으로 발작을 일으키는 경향이 지속되는 것은 뇌전증 정의에 부합된다. 따라서, 반사발작을 뇌전증 진단에 포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발작 사이 시간간격을 기준으로 24시간내에 군집으로 나타나는 발작은 발작의 연속으로 생각하여 ‘일 회 발작’으로 판단하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24시간 이상 경과 후에는 시간 간격의 제한이 없기 때문에 한 번의 발작이 있고 5-10년 동안 장시간 무발작 기간이 경과한 후 발생한 발작을 해석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만약 어떤 환자가 10세에 비유발발작이 한 번 있었고, 80세에 재발하였다면, 과거 운용적인 정의에서는 이를 뇌전증으로 진단하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운용적인 정의에서는 치료 완결의 판단 기준이 ‘10년동안 무발작’이기 때문에 이 환자의 두 번째 발작은 첫 발작으로 생각해야 한다. 발작 재발은 80-90%가 2년 이내에 발생하는데, 첫 발작 후 시간이 경과할수록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10,11]. 첫 비유발발작 후 재발률을 무발작 기간에 따라 조사한 연구에서 6개월동안 무발작 후 재발은 44%이고, 12개월 무발작 후는 32%, 18개월 무발작 후에는 17%로. 무발작기간이 길수록 재발률이 의미 있게 감소하였다[11]. 즉 발작의 재발 위험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감소하여 첫 발작 이후에 병원을 방문한 시간이 언제인가에 따라서 발작 재발률이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새로운 운용적 정의에서는 시간에 따른 발작 재발률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의사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3. 60% 이상 높은 재발 위험률의 기준
새로운 뇌전증 정의에서 논쟁의 핵심은 항목2)에서 한 번의 비유발발작이 있고 재발 위험이 높으면 뇌전증으로 진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뇌졸중 후 1개월에 발생한 비유발발작, 그 외 뇌의 구조적 원인으로 인한 발작, 뇌파에 뇌전증모양방전(epileptiform discharge) 같은 특징은 재발률이 높기 때문에 많은 뇌전증 전문가들이 비록 한 번의 비유발발작 일지라도 조기 치료를 선택한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한 번의 발작이 있고 재발 위험도가 두 번의 비유발발작이 있었던 환자에서 세 번째 발작의 재발 위험도보다 높다면 뇌전증으로 정의하는 것이 타당하다. Hauser 등의 연구에서[10] 두 번째 비유발발작 후 발작 재발 가능성은 59~90%이었으므로 새로운 운용적 정의에서는 재발위험도 기준을 60%로 정하였는데, 이는 다른 역학 연구에서 두 번째 비유발발작의 평균 재발률이 50%인 것에 비하면 의미 있게 높다[12,13].
재발률에 대한 문헌을 보면 해면기형(cavernous malformation)이 발작의 원인이면 5년내 발작 재발률은 94%이며[14], 뇌졸중이 있었던 경우는 10년내 71.5%, 중추신경계감염이 원인이면 10년내 63.5%이다[9]. 그리고 과거 뇌손상이 있었고 뇌파에 뇌전증모양이상이 있으면 재발률이 65%로 높다[15]. 그러나 연구에서 원인에 따른 위험도가 60% 이상이라고 자동으로 뇌전증으로 진단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한 번 발작 후 뇌전증모양방전이 뇌파에 보일 때 2년 재발률이 71%이지만[16], 다른 연구에서는 같은 조건의 환자의 3년 재발률을 56%로 보고하였기 때문에 정해진 위험률이 없어 결정이 어렵다[17]. 미국신경과학회(American Academy of Neurology)와 미국뇌전증학회(American Epilepsy Society)가 공동으로 첫 비유발발작 후 재발률에 관한 문헌을 조사하여 근거 중심의 안내서를 제시하였다[18]. 이는 좋은 참고자료이지만 지금까지 보고된 비유발발작 재발률에 대한 연구자료는 대부분이 5년 이내의 소규모 연구이며, 원인에 따른 재발률에 대한 연구가 매우 부족하여 신뢰할만한 정도로 재발률을 판정하기에는 제한이 많다.
4. 뇌전증 조기 치료의 의미와 효과
비유발발작이 한 번 생긴 후 재발률이 60% 이상으로 높아서 뇌전증으로 진단하였더라도 치료 시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운용적 정의를 제안한 목적 중 하나가 임상의사가 한 번의 발작 후 재발률이 높은 환자에게 뇌전증으로 진단하고 치료를 결정하는 근거를 지지하는 데 있지만, 치료 시작은 환자에게 약의 부작용과 경제적 부담을 주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결정을 해야 한다. 조기 치료의 발작재발 예방효과는 첫 발작 후 즉시 치료한 군과 두 번째 발작 후 치료한 군을 비교한 연구에서[13] 발작재발 시간을 지연시키고 2년동안 무발작 완화까지의 시간을 단축시켰다. 그러나 5년동안 추적 조사에서는 양 군 사이에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발작 완화율에 대한 조기 치료의 장기 효과(long-term effect)는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치료를 시작할 때 주요 재발예후지수를 정하여 발작위험을 계산하고 환자를 재분류하여 발작률을 조사하면 조기치료 효과가 달라진다. 즉 발작 횟수에 따라 0-2점(발작 횟수가 1회는 0점, 2-3회는 1점, 4회 이상은 2점), 신경계 이상이 있으면 1점, 비정상 뇌파이면 1점의 가중치를 주어 저위험, 중간위험, 고위험의 3군으로 나누고 조사한 결과, 중간과 고위험이 있을 때 조기 치료하면 1년, 3년, 5년의 추적기간 동안 재발이 의미있게 감소하였다[19]. 다시 말해 첫 발작 후 새로운 정의에 따라 1) 두 번의 비유발발작 또는 2) 한 번의 비유발발작이 있고 이상 뇌파를 확인하고 재발 위험이 높은 경우에는 조기 치료가 장·단기 발작 완화율을 높인다. 이는 새로운 정의에 따른 임상적 의미를 지지하는 좋은 증거이다.
5. 뇌전증 치료 완결(epilepsy resolved)
전통적인 개념에서는 뇌전증으로 한 번 진단받으면 그 진단이 사라지지 않는다. 만약 어릴 때 소발작으로 진단받고 치료 후 수 십 년동안 무발작이고 약물치료가 종료되었다면, 아직도 뇌전증 환자라고 할 수 있을까? 측두엽뇌전증 환자에서 수술 치료 후 10년 동안 약물치료없이 무발작이면 뇌전증이 있는 것인가? 이 둘의 경우 발작 재발 성향은 근본적으로 남아 있지만 장기간 무발작으로 “발작은 성공적으로 조절되었다” 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술 성공 후 영원히 무발작으로 되었다” 라는 의미를 찾고, 환자에게 뇌전증으로 인한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하여 ILAE에서는 새로운 정의를 제안했다[5]. 완화는 “질병이 정지되었다”는 의미로 질병이 없어졌다는 의미가 전달이 되지 않는다. 완치(cure)는 향후 발작이 재발할 확률이 일반 인구에서 발작이 나타날 확률과 같아졌음을 의미하는데 이는 실제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다. “뇌전증 치료가 완결되었다(resolved)”는 것은 “향후 무발작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이 환자에게 더 이상 뇌전증은 없다” 는 의미이다.
뇌전증 완결을 정의하기 위해서 무발작 기간과 치료중단 기간이 어느 정도가 적합한가? 재발위험은 환자의 나이, 뇌전증 또는 증후군 종류, 원인, 치료 같은 여러 요인에 따라 다르다. 청소년근간대뇌전증은 수십 년 동안 높은 재발률이 지속되고, 뇌질환 중에서 대뇌피질발달기형(malformations of cortical development)은 장기간 재발가능성이 높다[20]. 뇌전증의 원인 병소인 해면기형을 수술한 후 무발작이 되는 시기는 다양하다[21]. 그러므로 치료 종결을 위해서 무발작 기간과 그 후 재발률을 제고하였다.
Berg 등은[22] 장기간 발작 완화 후 재발을 조사한 연구에서 약물치료 없이 적어도 5년동안 발작이 없었던 경우를 “완전 완화(complete remission)”라고 정의하고 완전 완화가 있었던 어린이 347명을 평균 6.4년동안 추적한 결과 6%에서 발작이 재발하였다. 완화 후 1년, 5년, 8년 동안 누적 재발 가능성은 각각 1%, 5%, 8%이었는데, 이는 완전 완화 후에도 발작이 재발할 가능성이 매년 1% 정도임을 시사한다. 측두엽뇌전증 수술 후 평균 36개월 추적한 연구에서[23] 재발률은 6개월 이내 54.2%이지만 수술 후 6개월-1년에 16.8%, 1년-2년에 15.9%, 2-3년에 4.7%, 3-4년에 6.5%이고 4년 재발률은 단지 1.9%이었다. McIntosh 등은[24] 측두엽절제술 후에 발작이 완화되어 약물을 중단한 환자를 장기간 추적한 결과 처음 1년 동안 재발률은 11%였으나 서서히 감소하여 2년째 재발률은 3.8%, 5년째 재발률은 1.7%이었다. 이러한 추세를 보면, 측두엽절제술 이후에 약물투여를 중지한 경우에서도 무발작 기간이 길수록 재발률이 낮아지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만일 약물 투여를 중지한 이후에 무발작상태가 5년 이상 지속되었다면, 추후 발작 재발률은 약 1% 정도일 것으로 추정되어 이는 Berg 등의 연구결과[22]와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일반 인구에서의 발작 발생률이 약 50명/100,000명/년 임을 가정한다면, 치료 완결이라고 정의한 경우에서 발작 재발률은 약 20배로 뇌전증의 완치와는 큰 차이가 있으며, 치료완결의 의미를 짐작하게 한다.
6. 환자 정보가 불확실한 경우
임상의사는 새로운 정의를 사용함으로써 발작재발 가능성에 대하여 임상적 타당성을 가지고 위험도를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정의를 바르게 적용하고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다. 특히 장비와 인력이 부족하고 많은 정보를 공유하기 어려운 1차 의료기관에서 재발 위험율을 평가하고 뇌전증증후군을 진단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뇌MRI에서 이상이 발견되었을 때, 예를 들면, 뇌낭미충증이 우연히 발견되었더라도, 발작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뇌전증전문센터에 의뢰하는 것이 좋다. 비디오뇌파 정보가 없고 전형적인 발작인지 명확하지 않을 경우에는 뇌전증증후군으로 진단을 하기가 어렵다. 이와 같이 발작 위험의 명백한 정보가 없거나, 진단을 하기에 모호한 상황이 있을 때, “추정(probable)뇌전증 또는 가능(possible)뇌전증”의 용어를 사용할 수 있다. 다발경화증(맥도날드 진단기준)[25], ALS(엘 에스코리알 진단기준)[26], 편두통[27], 혈관치매[28]에서 사용하는 “추정 또는 가능” 진단은 환자의 상태를 주시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추정 뇌전증”의 진단명은 정보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환자에게 뇌전증이란 낙인을 갖게 하고 임상의사는 치료를 시작할 수도 있다. 반면 “뇌전증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을 언급하면 뇌전증 진단 없이 가능성을 고려하고 추적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나 임상의사에게 추가 부담이 없다. 국제뇌전증퇴치연맹은 “추정뇌전증이 있다”라는 모호하고 부담이 되는 용어보다는 “뇌전증의 가능성이 있다”라고 표현하여 뇌전증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도록 “추정뇌전증”의 정의를 만들지 않았다.
7. 운용적 정의가 가져 올 영향
뇌전증 진단은 개념적인 정의에서 표현한 것처럼 환자에게는 낙인일 뿐 아니라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인 파급효과가 중요하기 때문에 뇌전증의 새로운 정의가 갖는 효과는 여러 가지 영역에서 나타날 수 있다. 임상의사에게는 한 번의 비유발발작 후 재발률이 높은 상황에서 새로운 정의의 적용은 뇌전증 진단과 치료를 조기에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며, 이는 예기치 못한 비유발발작으로 인한 환자의 육체적, 심리적 손상과 사회적 손실의 가능성을 감소시킬 수 있다. 재발 위험이 높은 상황에서는 조기 치료는 1년, 3년, 5년 추적 동안 발작의 재발률을 의미 있게 감소시켰다[19]. 그리고 뇌전증의 진행을 막고 동반질환의 발생을 억제할 수 있도록 질병수정 치료(disease-modifying intervention)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 새로운 질병치료방법 연구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환자가 조기 진단으로 인한 낙인과 심리적 충격을 일찍 받을 수 있고 약물 부작용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받지 않아도 될 사회적 제약들, 예를 들면, 생명보험 가입 불가, 결혼의 어려움, 교육 기회나 취업 제한 같은 사회적, 경제적 영향을 조기에 받을 수 있다는 부정적 측면도 고려하여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정의 중에서 “뇌전증 치료 완결”이 갖는 긍정적인 면은 앞서 지적한 부정적인 면을 보상할 수 있다. “치료가 완결되었다”는 선언은 환자에게 낙인에서 벗어나 보험 가입, 운전, 운동 참여, 구직 같은 많은 분야에서 모든 것을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 또한 치료 완결의 성문화는 조기 치료에 따른 사회비용을, 치료 종결 없이 치료하던 과거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조기 치료는 두 번째 발작처럼 연이은 발작 위험을 줄임으로써 환자가 받을 보상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반사뇌전증 환자는 뇌전증증후군으로 분류하여 치료 혜택을 일찍 받을 수 있다.
8. 운용적 정의의 문제점
ILAE에서 새롭게 제안한 뇌전증의 운용적인 정의는[5] 2005년에 제안하였던 개념적 정의 이후에 오랜 기간 동안 제기되었던, “지속적인 발작의 재발성향(enduring predisposition of seizure recurrence)”의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는 매우 환영할만한 업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적인 내용에서는 이러한 제안이 과연 근거중심의 의학에 합당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실제로 이 보고에서 첫 번째 비유발발작 이후의 재발위험성을 10년 동안 60% 이상으로 규정한 근거를 Hauser 등의 연구에[6] 두고 있는데, 이 연구에서 2회의 비유발발작이 있었던 환자 수는 63명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95% 신뢰구간이 59-87%로 광범위하므로 이에 의거한 60%의 재발률은 과잉진단의 가능성이 있고, 추적관찰 기간 역시 4년 내외로, 이 보고서에서 규정한 10년 동안의 재발률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비판은 최근에 발표된, Lawn 등이[29] 강력하게 제기하였다. 저자들은 798명의 첫 번째 비유발발작이 있는 성인을 장기간 추적 관찰한 결과,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던 환자에서 뇌파검사가 정상이었던 경우는 53%(95% 신뢰구간, 47-58%)였고, 뇌파검사에서 뇌전증모양방전이 발견되었을 경우는 76%(95% 신뢰구간 64-87%)였다. 또한 과거에 있었던 뇌손상에 기인하는 경우에서는 뇌파검사의 결과에 관계없이 67%(95% 신뢰구간 60-74%)라고 보고하였다. 이 환자들이 첫 번째 발작 이후에 내원한 시기는 평균 24일로, 이 중의 28%만이 발작 후 1주일 이내에 병원에 왔으며, 만일 첫 번째 발작 이후에 진료를 받기 이전에 발작이 재발하였던 환자 236명을 연구에 포함하면(총 1,034명), 10년 내 재발률은 69%(95% 신뢰구간 65-72%)로써 모든 환자들이 ILAE 기준인 60%를 상회하기 때문에 이 기준이 너무 낮아 분별력이 없다고 비판하였다. 또한 재발률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의사에게 진료받는 시점이 매우 중요한데, 만일 뇌파검사에서 뇌전증모양방전이 있는 환자의 경우 첫 번째 발작 후 12개월 이후에 병원에 왔다면 이들은 모두 60% 기준에 미달하며, 뇌손상 기왕력이 있는 환자는 발작 후 1개월 이내에 병원에 온 경우만 60% 기준을 맞출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 연구는 과거 Hauser 등의[6] 연구와는 달리 많은 환자를 장기간 추적한 연구로, 95% 신뢰구간이 매우 작아서 신빙성이 높기 때문에 이 결과를 토대로 새로운 기준을 정립할 필요성가 있다. 만일 60%라는 기준을 유지한다면, 추적기간을 10년 이내에서 4년 정도로 줄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기준을 70% 정도 높이는 것이 뇌전증 과잉진단을 줄일 수 있으며 환자가 첫 번째 발작 이후부터 병원방문까지의 기간을 고려하여 그에 맞는 적절한 기준치를 제시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결 론
국제뇌전증퇴치연맹은 2014년에 이전의 개념적인 뇌전증 정의의 모호함을 보완하고, 장기간 무발작상태인 완치(완화)를 새롭게 정의하는 실제적 뇌전증 정의를 발표하였다. 새로운 실제적 정의는 1) 24시간 이상 시간 간격을 두고 나타나는 두 번의 비유발(또는 반사)발작이 있는 경우, 2) 한 번의 비유발(또는 반사)발작 후 10년 이내에 60% 이상의 높은 재발 위험율이 밝혀진 경우, 3) 뇌전증증후군으로 진단한 경우를 뇌전증으로 정의하였고, 뇌전증 치료의 종결을 의미하는 “뇌전증 치료 완결”은 1) 연령의존 뇌전증에서 적용 나이가 경과한 경우, 2) 최근 10년동안 무발작이고 최근 5년은 약물치료를 중단하였을 때로 정의하였다. 새로운 정의는 임상의사와 뇌전증 환자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겠지만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모두를 고려한다면 뇌전증 치료를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이 보고서의 운용적인 기준이 되는 연구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실제 임상에서 이 기준을 적용하기에는 근거가 취약하다는 점을 고려하여야 하며, 이 보고서가 임상의사로 하여금 첫 번째 발작 이후에 발작 재발가능성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향후 이 분야의 연구를 더욱 촉진 시킬 것으로 기대한다.
임상적 적용의 예[5]
2. 뇌졸중과 발작
65세 남자가 비유발발작으로 병원에 왔고, 6주 전에 좌측 중뇌동맥뇌경색이 있었다.
해설: 발작과 뇌졸중이 발생한 시점의 시간 관계를 고려하면(또는 뇌내감염 이나 뇌외상) 비유발발작의 재발 위험도가 높다(>70%). 그러므로, 새로운 정의에 의하면 (이전 정의에서는 아님) 이 환자는 뇌전증이 있다고 볼 수 있다.
3. 빛유발발작
6세 남아가 3일 간격으로 번쩍이는 불빛을 동반하는 비디오 게임을 하던 중에 발생한 두 차례의 발작을 경험했다. 이외에 다른 발작은 없었고, 뇌파에서 빛 자극에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였다.
해설: 새로운 정의에 의하면 (이전 정의에서는 아님) 이 환아는 빛에 의해 유발된 발작이지만, 번쩍이는 불빛에 대한 비정상적인 반응이 지속적으로 있었으므로 뇌전증이 있다고 볼 수 있다.
4. 뇌파에서 중심측두엽 극파가 있는 양성 뇌전증(BECTS)
22세 남자가 잠들 때 얼굴에 실룩거림을 동반한 발작이 9세, 10세, 14세에 있었고, 이후로는 증상이 없었다. 9세에 시행한 뇌파에서 중심측두엽에 극파가 있었다. 16세 이후로 약물치료를 중단했다.
해설: 연령의존 뇌전증증후군으로 진단되지만, 현재 22세의 나이로 호발 연령대를 지났기 때문에 뇌전증 치료가 완결(해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전 정의에서는 이와 같이 뇌전증 치료가 완결(해결)되었다는 내용은 고려하지 않았다.
5. 한 번의 발작과 대뇌피질이형성증
40세 남자가 왼쪽 손에 실룩거림을 보이는 부분발작에서 근간대성으로 진행하는 발작을 보였다. 발작은 1회만 발생했다. MRI에서 우측 전두엽에 대뇌피질이형성증이 보였고, 뇌파에서는 우측 전측두엽에서 발작간 극파가 보였다.
해설: 많은 임상의사는 이 환자에게 항뇌전증약을 처방하겠지 만 발작의 재발 위험성은 명확하지 않아 어떠한 정의로도 이 환자에게 뇌전증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향후 역학 연구에서 재발 위험에 대한 정보가 축적이 되면 이러한 상황이 정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6. 오랜 시간 전에 발생한 두 차례의 발작
85세 남자가 6세와 8세에 부분발작의 경험이 있었다. 뇌파, MRI, 혈액검사와 가족력은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8세부터 10세까지 항뇌전증약을 복용했고, 이후 중단했다. 이후 발작은 발생하지 않았다.
해설: 새로운 정의에 의하면, 10년 이상 발작이 없었고, 적어도 5년 이상 항뇌전증약를 복용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뇌전증은 해결(완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미래에 발작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는 이 환자에게 “뇌전증이 없다”라고 정의할 수 있다.
7. 긴 시간 간격을 두고 발생한 비유발발작
70세 여자가 비유발발작이 15세, 70세에 있었다. 뇌파, MRI, 가족력에는 특이 사항이 없었다.
해설: 이전과 최근 정의에서 이 환자는 뇌전증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정의하여도 많은 임상의사는 경련의 빈도가 낮으므로 굳이 치료하려 하진 않을 것이다. 검사를 통해 두 번의 발작이 각각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이라고 밝혀진다면 뇌전증이 없다고 볼 수 있다.
8. 의심스러운 정보
20세 남자가 6개월 동안 3차례의 목격자 없는 발작이 있다고 주장했고, 갑작스러운 공포, 말하기가 힘들고, 주변을 걸어 다녀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동반했다고 한다. 이 증상이 있을 때 환자는 기억 소실은 없다고 했다. 이외 다른 증상은 없었다. 뇌전증 위험인자나 이전에 발작은 없었다. 뇌파, MRI는 정상이었다.
해설: 이전 정의나 새로운 정의를 참고하여도 이 환자에게 뇌전증이 있다고 진단할 수 없다. 부분발작은 감별 진단이 될 수 있지만, 뇌전증으로 정의하려면 적어도 1회의 확실한 발작이 있어야 하고, 이는 발작처럼 보이는 행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향후 연구에서 “추정 또는 가능뇌전증”의 정의를 할 수 있으면 그 경계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