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화탄소중독은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가스중독이지만 증상과 징후가 모호하거나 다양하다. 두통, 어지럼, 근위약감, 구역, 구토, 의식소실 등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 중 두통은 가장 흔하고 초기에 발생하는 증상이다[1,2]. 하지만 일산화탄소 만성노출에 의한 두통은 전형적인 양상이 없고 신경학적 이상 소견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두통만 호소할 경우 일산화탄소 유발 두통이라 진단하기가 쉽지 않다. 급성 일산화탄소중독에 대한 보고는 많았으나 만성노출로 인한 두통에 대한 국내문헌 보고는 아직 없다. 저자들은 장기간 일산화탄소에 노출되어 발생한 두통 환자를 경험하여 보고한다.
증 례
40세 여자가 한 달 전부터 지속되는 두통을 주소로 내원하였다. 10년 전부터 두 달에 1회 정도 머리를 전체적으로 조이는 양상의 시각아날로그척도(visual analogue scale, VAS) 2점 정도의 긴장형두통이 있었으나 대부분 약물 치료 없이 자연스럽게 회복되었고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새로 발생한 두통은 이전 두통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는데, 주로 머리 뒤쪽에서 당기고 묵직한 느낌이 목과 어깨까지 퍼졌고 심할 때는 안구 주위에도 둔한 양상의 통증과 묵직한 느낌이 있었으며 가끔씩 욱신거렸다. VAS 5-6점 정도의 중등도 강도였고, 구역과 어지럼도 동반하였으며 빛 혹은 소리공포증은 없었다. 미용사로 근무하면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서서 일하였는데, 근무 중에는 일을 할수록 두통이 악화되었고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해도 호전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러한 두통으로 일에 집중을 하기가 어렵고 만성피로가 함께 동반되었는데 퇴근 후나 휴일에 잠을 자고 나면 두통이 호전되었다. 특별한 과거력이나 약물 복용력은 없었고 비흡연자였다. 혈압, 맥박수, 체온 등 활력징후는 정상이었다. 신체진찰에서 목과 양쪽 어깨에 압통점이 있었으며, 신경학적 진찰은 정상이었다. 지속적인 두통의 원인을 감별하기 위해 혈액검사, 소변검사, 뇌자기공명영상 및 뇌혈관자기공명영상 촬영을 시행하였으나 특이소견은 없었다(Fig. A). 병력과 검사결과를 바탕으로 개연만성긴장형두통(probable chronic tension type headache)으로 진단하고 진통제와 근육이완제를 꾸준히 복용하면서 경과를 관찰하였으나 두통은 여전히 지속되었다. 10일 후 환자는 근무하던 도중 두통과 구역이 심해지다가 같이 근무하던 동료와 함께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본원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응급실 도착 당시 의식은 회복된 상태였고 VAS 3점 정도의 머리가 전체적으로 둔한 두통만 호소하였다. 산소포화도는 97%로 정상이었으나 카르복시헤모글로빈(carboxyhemoglobin) 혈중농도가 23% (참고치 0.04-1.52)였다. 응급 동맥혈액가스 검사 소견은 pH 7.41, PCO2 28.9 mmHg, PO2 107.4 mmHg로 정상 범위였고 심근효소를 포함한 일반혈액검사와 심전도, 단순흉부방사선사진, 두경부 전산화단층촬영에서 특이소견은 없었다(Fig. B). 함께 이송된 동료의 카르복시헤모글로빈(carboxyhemoglobin) 혈중 농도도 27%였으며, 역시 평소 일할 때 경한 두통과 구역이 있었다고 하였다. 일산화탄소중독에 의한 실신으로 판단하고 100% 등압산소마스크 치료(non-rebreath mask)를 실시하였다. 환자와 동료 모두 다음 날 두통은 완전히 호전되었고 카르복시헤모글로빈 혈중 농도가 1%로 감소하여 퇴원하였다. 퇴원 후 환자는 미용실 내 가스시설을 점검하여, 순간온수기에 연결된 가스관에서 가스가 새는 것을 확인하고 교체하였다. 가스관 교체 이후 두통은 완전히 사라졌고 이후 재발은 없었다.
고 찰
본 환자는 평소 저빈도삽화긴장형두통이 있었으나 새로 발생한 두통은 구역감이 있고 강도가 세었으며 거의 매일 반복해서 발생하므로 긴장형두통의 진단기준을 만족하지는 못하였다. 명확한 두통 시작시점이 불분명하여 신생매일지속두통으로 볼 수도 없었다. 따라서 환자의 두통 양상만으로 분류하자면 개연만성긴장형두통(probable chronic tension type headache)으로 진단할 수 있다.
이전과 달리 두통이 가라앉지 않고 지속되어 이차성 두통에 대한 평가를 시행하였지만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하였고 동료와 함께 의식소실로 응급실에 후송되어 카르복시헤모글로빈 혈중 농도가 높았음을 확인한 후에야 일산화탄소노출이 두통의 원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병원에 처음 왔을 때 카르복시헤모글로빈을 측정하지 않았고, 언제부터 가스관이 새었는지를 명확하게 알 수 없어 노출 정도에 따른 증상 변화를 확인하기는 어려웠지만 같은 장소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도 비슷한 두통이 있었고 카르복시헤모글로빈 수치가 높았으며, 가스 노출 부위를 수리한 후 72시간 내에 증상이 소실된 점, 그리고 다른 두통 진단기준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일산화탄소의 만성노출에 의한 두통으로 판단하였다[3].
일산화탄소중독 시엔 뇌영상검사에서 담창구, 백질, 뇌피질, 해마 등이 흔히 침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뇌량, 시상 등 다른 부위에도 대칭적 병변이 관찰될 수 있지만 본 증례에서는 초기 평가 시 이러한 특징적 소견이 없어서 일산화탄소 노출을 고려하지 못했다.
일산화탄소유발 두통은 주로 전두부에서 시작되어 중등도 이상의 강도로 조이고 둔한 양상으로 지속되고 때때로 편두통처럼 구역, 구토가 동반된 박동성 양상으로 나타나지만 비특이적인 경우도 많다[2,4]. 카르복시헤모글로빈 혈중 농도가 올라갈수록 심한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으나 카르복시헤모글로빈의 혈중 농도와 증상의 심한 정도에 명확한 상관관계가 없다는 보고도 있다[2,3].
연탄 사용이 감소하면서 일산화탄소중독은 많이 줄었으나 아직도 난방, 작업 등의 이유로 프로판 가스를 비롯하여 일산화탄소에 노출될 수 있는 여건이 많은 편이다. 프로판을 연료로 이용하는 지게차가 사용되는 공장에서 30명이 집단으로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후 두통 등이 발생하였고[5], 18개월 동안 고장 난 세탁 건조기에서 발생한 일산화탄소에 노출되거나 본 증례처럼 고장난 순간 온수기 때문에 일산화탄소에 장기간 노출된 경우, 난방기구, 환기구 등의 고장에 의해 장기간 일산화탄소에 노출되어 두통과 어지럼이 있었던 경우도 있었다[6]. 기존 보고들에서 두통의 양상은 모두 비특이적인 양상이었고 진단 과정 중 주변 환경에 대한 조사로 만성적인 일산화탄소 누출이 확인된 경우들이었다. 이처럼 카르복시헤모글로빈 혈중 농도 측정이 일반적인 진료환경에서 용이하지 않으므로 진단을 위해서는 환경에 대한 자세한 병력 청취가 필요하다. 겨울철 응급실로 두통으로 내원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카르복시헤모글로빈 혈중농도 수치를 측정한 결과 약 6%가 일산화탄소중독으로 진단되었다는 연구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일산화탄소유발두통은 드물지 않다[7].
소량의 일산화탄소 만성노출에 의한 두통을 두통의 양상이나 영상검사 등으로 진단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평소 병력청취에서 소홀하기 쉬운 직장, 거주지 난방상태, 주위 환경 및 직업에 대한 질문과, 함께 생활하는 가족과 동료의 증상에 대한 정보를 추가적으로 얻는 것이 일산화탄소 만성노출에 의한 두통 진단에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