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 례
76세 여자 환자가 기억력장애로 타 병원에서 의뢰되어 외래 진료를 위하여 방문하였다. 평소 가족들이 느끼기에 기억력 문제는 없었으나 내원 2개월 전 무렵 갑자기 말수가 줄고 ‘사과’를 ‘배’라고 하는 것처럼 단어를 헷갈려 하며, 다시 가르쳐주어도 잘 기억하지 못하였다. 방금 들은 이야기를 돌아서면 기억하지 못하고 약속을 잊어 실수를 한 적도 있었다. 단순한 집안일과 같은 일상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었지만 은행 업무와 같이 평소에 자주 하지 않거나 복잡한 일상생활의 경우 전처럼 수월하게 하지 못하였다. 2개월 전 처음 증상이 발생하였을 때와 비교하면 단순한 사물의 이름대기와 혼자서 교회에 가는 정도의 일상생활능력은 회복되어 다소 호전된 편이라고 하나 예전처럼 대화를 활발하게 하지는 않았다. 환자는 무학이자 비문해로 오른손잡이였고 과거 과수원 일을 하였으나 2개월 전 증상 발생 직후부터는 집안일만 하였다고 한다. 정확한 발병 시점은 모르나 고혈압을 진단받아 혈압강하제를 복용 중인 것 외에 다른 병력은 없으며, 가족력 또한 특이사항은 없었다.
신경학적 진찰에서 뚜렷한 국소신경학적 결손은 없었고 뇌신경, 근력, 감각, 반사기능 모두 정상이었다. 처음 증상 발생 2개월 뒤에 시행한 한국판간이정신상태검사(Korean-Mini Mental State Examination, K-MMSE)에서는 총점 30점 중 16점이었고, 임상치매척도(Clinical Dementia Rating, CDR)는 1점이었다. 증상 발생 5개월 뒤에 시행한 검사에서는 K-MMSE 20점, CDR 0.5점, 바델지수(Bathel Index, BI) 20점, 한국형도구일상생활능력(Korean-Instrumental Activities of Daily Living, K-IADL) 0.3이었고, 무학, 비문해이자 검사 방법을 잘 이해하지 못하여 전두엽수행기능검사 상당 부분은 시행이 불가능하여 평가에 한계가 있었으나 서울신경심리검사2판(Seoul Neuropsychological Screening Battery-second edition, SNSB-Ⅱ)에서 단어 이름대기와 언어기억 저하를 보였고, 수행한 과제로만 판단하여도 전두엽수행기능의 저하가 의심되었다. 한국판보스턴이름대기검사(Korean version-Boston Naming Test, K-BNT)에서 60개 문항 중 17개를 맞혔고 서울언어학습검사(Seoul Verbal Learning Test)의 지연회상 및 재인 과제에서 모두 저조한 수행을 보였다. 즉각회상은 양호하였지만(29.33 percentile) 지연회상 과제에서는 단어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였고(4.88 percentile), 지연회상에 비하여 재인 수준은 높았으나 객관적 저하는 보여(13.59 percentile) 현저한 언어기억력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Table 1).
질문 1. 이 환자의 감별진단은?
인지장애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고 특히 일부 원인 질환은 치료가 가능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인지장애 증상이 있을 때 반드시 그 원인 질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인지장애 환자를 진찰할 때, 특히 문진 시 중요한 것은 첫 번째로 나타난 주된 증상, 증상 발생 양상(급성 또는 만성), 지속 기간 및 진행 양상 등이다. 앞서 소개된 환자의 경우 기억장애와 함께 말수가 줄고 단어를 헷갈리는 증상이 있었고, 증상 발생 시보다 다소 호전되었으나 증상 발생 2개월 뒤 시행한 인지기능평가에서 여전히 객관적인 인지장애를 보였다. 치매선별검사인 K-MMSE에서 16점으로 인지장애가 관찰되었다. 또한, 증상 발생 5개월 뒤 시행한 SNSB-Ⅱ에서 여러 인지 영역에 걸쳐 기능저하를 보인 바 있다. 갑자기 증상이 발생하였고 증상 발생 2개월 후에는 발생 당시보다 호전을 보인다는 점을 생각할 때 퇴행 뇌질환보다는 다른 원인에 의한 발생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갑작스러운 인지저하가 발생할 수 있는 감별질환은 급성 뇌경색, 뇌출혈과 같은 뇌혈관질환, 약물이나 발열, 전해질 불균형 등의 전신질환을 생각해볼 수 있으며 뇌염, 뇌종양도 고려할 수 있다.
질문 2. 이 환자의 진단을 위하여 해야 할 검사는?
원인 질환 감별을 위하여 신경학적 진찰과 더불어 다양한 검사를 계획해볼 수 있다. 감염, 약물, 대사질환 등 전신질환 감별을 위한 혈액검사와 뇌영상검사가 대표적이다. 뇌영상검사의 경우 구조적 이상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와 뇌기능을 알 수 있는 검사로 구분해볼 수 있는데, 뇌 전산화단층촬영(computed tomography, CT)과 자기공명영상(magnetic resonance imaging, MRI)은 뇌 구조 문제를 감별하는 영상검사이며, 뇌 플루데옥시글루코스18F-fluorodeoxyglucose (18F-FDG) 양전자방출단층촬영(positron emission tomography, PET)은 뇌기능 문제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영상검사로, 뇌파와 더불어 대표적인 뇌기능 평가 검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가능하다면 아밀로이드PET를 시행하여 아밀로이드 침착이 있어 단일 원인 질환이 있는 것이 아닌, 알츠하이머병의 병리를 같이 가진 혼합형인지에 대한 여부를 파악하여 향후 환자의 예후 판정과 치료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환자는 증상 발생 두 달 만에 타 병원에서 뇌 MRI를 시행하였고, MRI에서 좌측 속섬유막무릎(genu of internal capsule) 부위로 확산강조영상(diffusion weighted image, DWI) 및 겉보기확신계수(apparent diffusion coefficient, ADC)영상에서 고신호강도 병변이 관찰되어 만성 뇌경색으로 진단되었다(
Fig.).
환자의 병변이 확인된 속섬유막의 무릎뿐 아니라 속섬유막의 앞다리(anterior limb of internal capsule), 내측 측두엽(medial temporal lobe), 모이랑(angular gyrus), 띠다발이랑(cingulate gyrus), 꼬리핵(caudate nucleus) 등에 병변이 생길 경우 전략뇌경색치매(strategic infarct dementia)가 흔히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시상-전두엽 회로를 이루는 시상과 속섬유막무릎 부위 병변에서는 전두엽기능장애뿐 아니라 시공간기능장애나 실어증 등 좀 더 광범위한 장애가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도 보고된 바 있다[
1]. 따라서 이 환자의 증례는 한 번의 국소적인 뇌경색 병변이지만 다발성 인지기능장애 및 일상생활능력의 저하가 유발된 경우로, 혈관치매, 특히 전략뇌경색치매 가능성을 고려해볼 수 있는 사례이다.
질문 3. 이 환자의 예상되는 임상 경과 및 예후는?
혈관치매 중 다발뇌경색치매는 뇌경색이 반복되면서 인지기능을 포함한 신경계증상의 악화를 보이고 피질하치매 또한 서서히 진행하는 경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전략뇌경색치매의 인지기능장애 관련 예후는 비교적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속섬유막무릎 부위 뇌경색으로 인지기능장애가 발생한 4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1년간 추적한 연구에서 12개월 사이에 기억력 과제 수행 및 MMSE 총점 개선이 보고되기도 하였다[
2]. 이는 병변과 관련한 대체 경로가 발달하여 인지기능장애에 대한 보상과 회복이 일어나고 추후 저하된 피질의 대사 회복이 이루어지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질문 4. 이 환자의 치료는?
혈관치매의 가장 기본적이자 예방적이기도 한 치료는 뇌졸중의 치료와 예방이다. 급성 뇌졸중의 조기 진단과 치료, 뇌졸중 재발방지를 위한 약물 투여, 뇌졸중 위험인자를 적극적으로 조정하여 혈관치매 관련 뇌의 변화를 방지하거나 지연하는 것이다. 이 환자는 과거 고혈압 진단 후 혈압강하제 투약은 하고 있었지만 그 외 약제는 복용한 바 없는 자로, 고혈압에 대한 적극적인 조절과 함께 뇌졸중 재발 위험도를 낮추기 위하여 항혈소판제 투여를 시작하였으며 추후 경과에 따라 우울, 수면장애 등 조절이 필요한 증상에 대한 조정을 계획하였다.
토 의
혈관치매는 인지저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혈관성 원인인 질환들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증상과 혈관병리의 특징이 다양하기 때문에 혈관인지장애에 대한 하나의 통합된 진단 및 분류 기준 정립 또한 쉽지 않았다. 오랜 세월 동안 정신장애진단통계매뉴얼-4판(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4th edition, DSM-IV), 국제질병분류-10판(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 10th revision, ICD-10), Alzheimer’s Disease Diagnostic and Treatment Centers (ADDTC) criteria와 더불어, 대표적으로 사용되어 온 혈관치매 진단기준은 the National Institute of Neurological Disorders and Stroke and the Association Internationale pour la Recherche et l’Enseignement en Neurosciences (NINDS-AIREN) criteria이다. 이는 기억력을 포함한 2가지 이상 영역의 인지장애와 뇌졸중에 의한 신체적 영향이 원인이 아닌 일상생활능력 저하가 동반되어 있고, 신경학적 진찰에서 국소 이상 소견, 뇌영상에서 뇌혈관질환에 합당한 소견이 있으며, 뇌졸중 발생 후 3개월 이내에 발생한 치매, 인지기능의 갑작스러운 저하, 계단식의 인지장애 진행 양상이 있을 경우 혈관치매로 진단하는 임상 진단기준이다(
Table 2) [
3]. 이 진단기준과 관련하여 병리적 측면으로 검토해보면 특이도는 높지만 민감도는 떨어진다는 의견이 있어 이후 몇 가지 새로운 분류기준이 발표되었다. 새로운 분류기준은 경도 인지장애 단계를 포함하며 발생기전에 따른 여러 아형을 제시하여 주목받았으나 추가적인 임상 병리적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4,
5]. 혈관치매의 분류와 관련해서도 여러 기준이 제시된 바 있는데 모두 임의적 기준이며, 대표적으로 뇌혈관질환의 원인에 따라 분류하기도 하는데 각 아형 간의 혼합형이 존재할 수도 있다(
Table 3) [
6].
혈관치매의 임상증상은 병변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고, 대뇌피질 및 피질하 증상으로 구분해볼 수도 있다. 대뇌피질 증상은 탈억제, 의지 상실, 수행기능 저하와 같은 전두엽 증상부터 실어증, 실행증, 무시증후군 등의 두정엽 증상 등 병변의 위치에 따라 다양하다. 성격 및 감정의 변화, 우울증, 행동장애, 보행장애, 소변 관련 증상 등은 피질하 증상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신경 심리검사에서 관찰되는 혈관인지장애의 특징 또한 병소 위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수행기능의 저하가 두드러지는 것이 특징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빠른 인지 처리 속도가 요구되는 과제를 수행할 때 특히 뚜렷한 차이를 보이게 된다[
6].
혈관치매의 치료는 조절 가능한 관련 증상을 완화하거나 생활습관 개선 및 필요 시 약제 투여를 통하여 혈관질환 위험인자를 조정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혈관치매에 특정한 치료제로 승인된 약제는 없다. 다만, 알츠하이머치매 치료에 승인된 대표적 약제인 콜린분해효소억제제 및 메만틴의 혈관치매에 대한 효과와 관련한 다양한 연구가 있었는데, 혈관치매와 알츠하이머치매가 신경병리적, 생화학적으로 일부 유사한 특징을 보이기 때문이다[
7].
콜린분해효소억제제의 경우, 혈관치매에서도 콜린결핍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투여 시도 및 효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콜린은 전뇌 기저부에서 생성되어 대뇌백질을 거쳐 대뇌피질로 전달되는 경로를 거치는데, 백질 변성이나 대뇌피질로 전달되는 콜린 경로의 차단 시 집중력과 수행기능 저하가 초래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혈관치매 환자의 대뇌피질 및 해마, 선조체, 뇌척수액에서 아세틸콜린의 활성도가 저하되어 있다는 보고를 바탕으로 혈관치매에서의 콜린분해효소억제제의 효용성이 제기되어 왔다[
8]. 그러나 이 개념은 이후 신경 생화학적 분석들을 통하여 반박되는데, 순수한 혈관치매에서는 콜린결핍이 나타나지 않고 혈관치매와 알츠하이머 치매의 혼재와 같은 혼합형치매의 경우에만 콜린 시스템과 관련하여 알츠하이머치매와 동일한 수준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6]. 실제로, NINDS-AIREN 기준으로 혈관치매 진단에 합당한 자들을 대상으로 수행된 갈란타민, 도네페질, 리바스티그민 연구에서 그 효용성에 관하여 일관적이지 않은 결과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9-
11]. 갈란타민과 리바스티그민 연구에서는 인지 능력이나 일상생활을 포함하는 전반적인 기능상 유효성을 보이지 않았으며, 도네페질 연구의 경우 효과가 없거나 인지 개선은 유의하였으나 전반적인 기능상 효과는 보이지 않거나, 전체적인 기능의 향상은 보였으나 인지 개선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9-
11].
메만틴은 N-methyl-D-aspartate (NMDA)수용체길항제로 뇌허혈에서 글루탄산염에 의하여 유발된 신경 독성을 억제한다. 혈관치매에 대한 메만틴 효과와 관련하여 두 가지 연구가 대표적인데, 두 연구 모두에서 작지만 뚜렷하게 인지 개선 효과는 있었으나 일상생활능력을 비롯한 전반적 기능적 측면의 개선 효과를 입증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12,
13]. 그 밖에 세레브로라이신(cerebrolysin), 항염증 작용을 위한 비스테로이드소염제, 칼슘통로차단제인 니모디핀(nimodipine) 등 다양한 약물 연구가 있었으나 연구 결과가 일관되지 않거나 시행한 연구가 소규모여서 결과를 확대하여 해석하는 것에 무리가 있는 점 등 여러 논란이 있어 아직까지 혈관치매에 특화된 치료 약제는 없는 실정이다[
6].
KEY POINTS
1. 갑자기 발생한 인지저하의 감별질환
◇ VITAMINS
• Vascular (혈관성)
• Infections (감염)
• Toxic-metabolic (독성-대사)
• Autoimmune (자가면역)
• Metastasis/neoplasm (종양)
• Iatrogenic/inborn errors of metabolism (의인성/선천)
• Neurodegenerative (신경퇴행)
• Systemic/seizures (전신질환/경련질환)
2. 전략뇌경색치매가 발생할 수 있는 병변 부위
◇ 속섬유막(internal capsule), 내측 측두엽(medial temporal lobe), 모이랑(angular gyrus), 띠다발이랑(cingulate gyrus), 꼬리핵(caudate nucleus), 창백핵(globus pallidus), 시상(thalamus) 등
3. 간략한 혈관치매의 진단기준
◇ 인지기능 저하
• 일상생활에 장애를 초래할 정도의 인지기능 저하
• 기억력장애와 함께 최소 2가지 이상의 인지능력 손상
• 갑작스러운 발생, 계단식 악화 또는 기복, 점진적 악화 혹은 뇌졸중 발생 3개월 이내에 발병한 치매
◇ 중추신경계 이상징후 및 뇌영상에서 관찰되는 뇌혈관질환 소견
• 편측마비, 안면마비, 감각저하, 시야결손, 구음장애, 삼킴곤란, 바빈스키징후 등
• 자세 불안정 - 자주 넘어짐, 보행장애
• 비뇨기질환으로 설명할 수 없는 소변 증상
• 성격이나 정동장애
• 인지기능장애를 초래할 만한 허혈, 출혈 병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