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Korean Neurol Assoc > Volume 36(3); 2018 > Article
뇌전증을 앓은 역사 속 유명인들

Abstract

Background

There are numerous famous epileptics, some of whom are merely rumors or fictional, and many of which have been designated as such without objective considerations.

Methods

Six famous epileptics were selected and investigated in various literature sources from a medical point of view, focusing on peer-reviewed journals, biographies, books, and media.

Results

The diagnosis of epilepsy in two leaders prior to the 19th century was uncertain due to the lack of objective evidence. The diagnosis could be established in two artists in the 19th century, while it is certain that two politicians in the 20th century had epilepsy, probably due to stroke.

Conclusions

Retrospective diagnoses of epilepsy require documentation of detailed symptoms and medical records of epilepsy. This retrospective review of the literature can provide a basis for assessing famous historical epileptics.

서 론

대한민국에서 뇌전증은 2000년대 초반까지도 간질이라 불리었다. 간질이라는 단어의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하여 2008년에 대한뇌전증학회(당시 대한간질학회)와 한국뇌전증협회(당시 한국간질협회)에서 노력하여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이러한 노력의 이유는 뇌전증 환자를 향한 사회의 편견에 대항하기 위함이다. 발달하는 의학에 힘입어 2000년을 전후하여 빠르게 늘어난 치료제의 종류와 치료 성적의 향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뇌전증 환자는 뇌전증이라는 질환 그 자체보다 사회적 편견이나 우울, 불안 때문에 삶의 질의 저하를 겪는다[1].
이러한 뇌전증 환자에게는 발달된 의학과 약물에 대한 지식이나 의사와의 상담 외에도 뇌전증을 이겨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큰 용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뇌전증을 이겨낸 사람들에 대해서 자세한 진단 근거를 찾거나 의학적 접근을 시도하기는 쉽지 않기에, 각종 인터넷 페이지와 여러 선생님들의 강의에서 열거하는 예는 많지만 어떤 이유로 뇌전증 진단에 도달하였는지 자세히 밝힌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본고에서는 뇌전증을 가진 역사적 인물 중에서도 잘 알려진 정치인과 예술인에 대하여 문헌 조사를 하고, 이들의 뇌전증에 대한 근거를 의학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대상과 방법

잘 알려진 뇌전증 환자의 예 중에서도 유명한 정치인과 예술인으로서, 근대 신경학이 발달한 19세기를 기준으로 세 개의 시대로 나누었다. 19세기보다 이전의 인물로서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19세기에 걸쳐서 살았던 표도르 도스토옙스키(Fyodor Dostoyevsky)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그리고 20세기에서는 블라디미르레닌(Vladimir Lenin)과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Roosevelt)를 선정하였다. PubMed와 Google에서 각 인물의 이름과 “epilepsy”, “seizure”를 키워드로 사용하여 국제전문학술지, 책, 웹사이트, 신문기사를 포함한 다양한 문헌에서 뇌전증을 시사하는 소견이나 기록을 찾아서 의학적 관점에서 자세히 고찰하였다.

결 과

1.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 BC 100‑BC 44)

율리우스 카이사르(이하 카이사르)는 고대 로마의 유명한 정치인이자 군인으로서,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당대의 군사 활동과 연설 등 동시대의 기록 그리고 플루타르코스(Lucius Mestrius Plutarchus)와 수에토니우스(Gaius Suetonius Tranquillus)의 전기가 주요한 출처이다. 플루타르코스는 epileptikoῖs (epilepsy)라는 단어를 사용하였고, 수에토니우스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repente animo linqui(갑작스런 의식장애)”라는 증상이 등장하고, “comitiali quoque morbo bis interres agendas correptus est(두 번의 쓰러짐이 있었다)”라는 표현도 등장한다[2]. 그 외의 두통을 호소하거나 쓰러지는 일들에 대해 그 병인에 대해서는 기생충감염, 말라리아 등의 많은 논란이 있지만, 다수의 서적이나 후세의 기록에 의하여 경련 발작이었음이 인정을 받고 있다. 특히,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의 희곡 Julius Caesar의 1막 2장에서는 카스카(Casca)가 등장하여 카이사르가 시장에서 쓰러져 거품을 무는 등의 증상을 이야기하고, 이에 대해서 등장인물인 브루투스(Brutus)가 “Tis very like. Hea hath the falling sickness.”라고 말한다[3]. 여기서 “falling sickness”라 함은 현대에서 epilepsy를 뜻하는 것으로, 카이사르가 뇌전증 병력이 있음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에는 ROME이라는 HBO, BBC, RAI의 합작 드라마에서도 뇌전증을 시사하는 증상이 묘사되어 카이사르의 뇌전증에 대해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4]. 하지만, 카이사르는 검사나 치료와 같은 의무기록이 없으며 대부분의 문헌은 수에토니우스와 플루타르코스의 전기를 바탕으로 후세의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을 남긴 것이다. 그런데 전기문의 저자인 수에토니우스와 플루타르코스는 카이사르가 사망하고도 약 100년 후에 태어난 사람인 것을 생각한다면 실제로 벌어진 일과는 차이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암살을 당한 후에 부검을 한 기록은 있는데, 여기서는 23차례의 자창에 의한 사망을 확인하는 정도의 기록만 남아있다[5]. 따라서 카이사르에게 뇌전증이 있었을 가능성은 있겠으나 증거는 없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2.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1769‑1821)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이하 나폴레옹)는 프랑스의 군인이자 초대황제로서 비교적 많은 사료가 남아있으나, 역시 부검 소견 이외의 의무 기록은 없다. 나폴레옹에 대해서 의학적으로 주로 이야기하는 분야는 그의 사인에 대한 것으로, 사망 후의 부검 소견을 바탕으로 비소중독과 위암에 의한 사망이 주로 논의되고 있으며 특히 위암에 대해서는 그 병기(stage)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는 주장이 있다[6,7]. 나폴레옹의 뇌전증 발작에 대해서는 뇌전증 발작과 심인성 비뇌전증성 발작 모두 가능성이 있다[8]. 뇌전증 발작에 대해서는 그의 전기문에서 자세한 언급이 있다: 1805년 10월 1일 전신긴장간 대발작이 발생하였는데, 저녁 식사 후 황후 조세핀(Josephine)과 함께 침실로 가다가 바닥에 쓰러져 경련발작이 있었고 숨을 쉬지 않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이에 대하여 황후는 Charles Talleyrand 등에게 소문이 나지 않도록 주의를 시켰다[9,10]. 정확한 날짜와 상황에 대한 기술이 있어 이러한 서술이 신빙성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뇌전증 발작증상에 대해서 나폴레옹이 치료를 받았다는 기록은 없다. 나폴레옹이 뇌전증을 앓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그중에 외상, 위암 그리고 요독증에 의한 것이 있다: 나폴레옹이 1793년의 툴롱(Toulone) 전투에서 입은 두부의 외상이 확인된 바가 있어 외상 후 뇌전증을 생각해볼 수 있겠으며[8], 사인으로 지목받는 위암의 뇌전이에 의한 뇌전증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겠다[6,7]. 또한 당시 유행하던 매독에 의한 합병증으로 요독증과 그로 인한 뇌전증 발작 가능성이 제기된 적이 있다[8,9]. 그러나 이 중 어느 것 하나도 명확한 근거는 찾기 힘들다. 따라서 나폴레옹에게 뇌전증 발작이 있었음이 강력히 의심되지만 객관적인 근거는 부족하다고 볼 수 있겠다.

3. 표도르 도스토옙스키(Фёдор Достое́вский, Fyodor Dostoyevsky, 1821‑1881)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이하 도스토옙스키)는 제정 러시아의 소설가로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가 중의 한 명이다. 태어날 때부터 가난하였고 사형 선고 집행 직전에 특사로 풀려났으나 시베리아에 유배당하였으며, 전 생애에 걸쳐 우울증과 뇌전증에 시달렸다[11]. 도스토옙스키는 군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고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 오갔던 편지가 남아있어 뇌전증 증상에 대해서 비교적 정확한 시간적 순서로 배열할 수 있고, 증상의 빈도까지 추측할 수 있다. 그의 경련 중에서 타인에 의하여 첫 번째로 기록된 것은 1850년에 그가 기술직으로 군에서 복무할 당시에 군의관이 기록한 것으로서, 전신긴장간대발작을 기술하였다[12]. 이후로도 도스토옙스키 자신이 쓴 편지에 뇌전증 발작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13], 아름다움이나 신비로움, 행복감 등을 느끼거나, 외부 세계에 대한 비현실적인 인식이나 환시를 경험하였다고 기술하였다. 특히 1860년 이후의 편지에서는 발작의 날짜와 횟수, 강도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증상에 대한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14]. 또한 도스토옙스키와 가까이 지냈던 철학자인 Nikolay Strakhov (Никола́й Стра́хов)는 관찰한 증상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하였다: “부활절 전날의 자정에 가까운 시각, 도스토옙스키는 행복감과 기쁨으로 가득 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그의 이야기에 동조하였을 때, 황홀감의 절정에 있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는 할 말을 찾는 것처럼 잠시 망설이고,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벌렸다. 나는 도스토옙스키가 어떤 특별한 말로 나에게 영감을 줄 것이라 간절히 기대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알 수 없는 신음소리를 길게 내면서 의식을 잃은 채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뻣뻣한 상태로 경련을 하였고, 입가에는 거품이 있었다” [15].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motionless staring과 뒤이어 발생하는 전신긴장간대발작이라 하겠다. 도스토옙스키의 사망으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1960년대부터 다수의 국제전문학술지에서 도스토옙스키의 뇌전증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어 왔고, 그의 편지, 일기, 가족과 친구들의 증언 그리고 그들을 망라한 전기문 등을 바탕으로 학계에서는 도스토옙스키의 뇌전증 병력이 확실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대의 의학기술과 기록만으로는 뇌전증 발생 부위를 단언할 수 없겠으나, 황홀감이나 공포감 등의 감정을 동반하는 부분발작이 있고 발작 후 실어증에 대한 묘사가 있는 점으로 미루어 우성 대뇌반구의 내측두엽 또는 뇌섬엽에서 시작하는 뇌전증에 의한 부분발작과 뒤이어 발생하는 전신화 등으로 추측하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12,13,16,17]. 평생 그를 따라다닌 가난 때문일까, 아니면 뇌전증에서 흔히 동반되는 우울감이 심해서였을까. 도스토옙스키는 객혈과 폐출혈로 사망할 때까지 뇌전증 증상에 대해서는 치료받지 않았다.

4.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빈센트 반 고흐(이하 반 고흐)는 네덜란드의 화가로서, 세계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반 고흐의 인생에 대한 기록은 가족이나 친구와 주고 받은 800여 편의 편지와 그의 그림 그리고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의 의무기록에 근거한다[18-21]. 뇌전증에 대해서 구체적인 기록 중의 하나는 반 고흐가 1888년에 프랑스의 한 병원에 입원한 때의 의무기록과 당시의 편지인데, 그 입원의 동기와 경과는 다음과 같다[18]. 1888년 10월부터 “Studio of the South”에서 동업을 하던 폴 고갱(Paul Gauguin)과 그 해 12월 23일에 크게 다투고는 그에게 술잔을 던지며 칼로 위협하고, 스스로 귀를 자르는 등의 행동을 하여 경찰에 신고되어 아를(Arles)의 병원에 입원하게 되였다. 당시의 주치의는 Felix Rey라는 젊은 의사였는데, 그는 반 고흐에게 뇌전증을 진단하고 브롬화칼륨(potassium bromide)을 처방하였다. 브롬화칼륨은 1970년대까지도 항경련제나 안정제로 사용된 약물로서, 반 고흐가 입원 후에 이 치료를 받고 약 3주만에 동생들에게 쓴 편지에서 브롬화칼륨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자신의 증상이 매우 좋아졌다고 하였으며, 퇴원 후 “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 and Pipe”를 그려냈다(Fig. 1). 이후 반 고흐의 뇌전증 진단은 1889년에 다시 한 번 확인되는데, 생 레미(St. Remy)의 Théophile Peyron이라는 의사는 의무기록에서 “반 고흐에게는 긴 간격을 두고 발생하는 뇌전증 발작이 있다고 본다.”라고 기록하였다[20]. 한편, 반 고흐의 뇌전증에서 그 원인으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는데, 당시에 예술가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술(absinthe)과 그 성분인 투우존(thujone)이다. 특히 반 고흐가 술을 마신 후에 정신증상이나 뇌전증 발작이 있었다는 점에서 뇌전증 발작의 원인 물질로 지목되어왔다. 1873년에는 épilepsie absinthique라는 명칭이 사용될 만큼 뇌전증과의 연관성이 입증되었고 1920년대에는 뇌전증 모델을 만드는데 사용하였으며[22,23], 현대에 이르러서는 γ-aminobutyric acid-A 수용체 대항제로 작용하는 구체적인 기전이 밝혀졌다[24]. 반 고흐의 뇌전증의 세부 분류에 대해서는 Gastaut가 1956년에 반 고흐에 대해서 정신운동성 뇌전증(psychomotor epilepsy)을 언급한 후로[25], 측두엽 뇌전증에서 보이는 Geschwind syndrome(측두엽 뇌전증 환자에서 hypergraphia, hyper- or hypo-sexuality, circumstantiality, hyperreligiosity 등의 행동증상을 보이는 증후군) 등으로 설명하는 시도가 있었다[26]. 위의 내용을 종합하였을 때, 반 고흐의 뇌전증은 정확한 날짜와 자세한 증상을 여러 편지에서 세부적인 기록에 의거하여 확인할 수 있으며 뚜렷한 유발요인(투우존)도 있고, 여기에 의무기록이 더해지므로 그의 뇌전증은 확실한 진단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가능한 뇌전증의 세부 분류로는 측두엽 뇌전증이나 약물에 의한 뇌전증 등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18,19,26].

5. 블라디미르 레닌(Владимир Ленин, Vladimir Lenin, 1870‑1924)

블라디미르 레닌(이하 레닌)의 본명은 블라디미르 율리아노프(Улья́нов, Ulyanov)이다. 레닌이라는 이름은 혁명운동을 하며 사용한 가명이다. 그는 러시아와 소비에트 연방의 정치인이자 노동운동가로서, 레닌주의의 창시자이고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의 초대 당수였다. 1990년대 이후로 미국인들을 중심으로 한 분석에 따르면, 반복되는 뇌졸중을 겪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뇌전증 발작의 증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27]. 레닌은 뇌졸중의 가족력이 있는데, 1886년에 아버지가 뇌출혈로 55세에 사망하였다. 또한 레닌은 장기간의 정치활동으로 상당한 스트레스가 있었고 담배를 많이 피웠다 하므로, 이로 인한 뇌졸중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Ilya Osipov라는 러시아 정신과 의사는 레닌에 대해서 뇌졸중의 전형적인 증상을 기술하였다: 주요한 시기는 1922년 3월, 1922년 12월, 1923년 3월, 그리고 1923년 10월 이후이다. 첫 번째 시기에 우측 반신의 저림증상과 간헐적인 오른손의 마비 그리고 운동성 실어증을 기술하였다. 이러한 증상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발생하고 20분에서 2시간 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 시기에는 언어장애는 없었으나 우측 반신마비가 있어서 이 때부터는 연설문을 쓸 수가 없어졌다. 세 번째 시기에는 우측 반신마비와 완전 실어증이 발생하였다가(Fig. 2), 왼손으로 글씨를 쓰고 물건의 이름을 말할 정도까지 호전되었다. 하지만 1923년 10월 이후로 간헐적인 실신이 있었고 뇌전증 발작이 동반되었으며, 1924년 1월 24일에 약 50분 동안의 뇌전증지속증(status epilepticus)으로 사망하였다[27,28]. 레닌의 부검 소견에서는 좌측 속목동맥이 완전히 막혀있었으며, 좌측 대뇌 반구에서 다발성 낭성 변화(multiple cystic change)가 있고 우측 대뇌 반구에 비하여 위축이 심하였다[27-29]. 이상을 종합하였을때, 레닌이 겪은 신경학적 증상은 뇌경색으로 인한 악화와 호전의 반복임을 짐작할 수 있다. 뇌경색의 기전으로는 좌측 속목동맥의 협착으로 인하여 동맥에서 동맥으로 색전(artery-to-artery embolism)이 생기거나 혈류역학적으로 뇌경색(hemodynamic infarction)이 반복해서 발생하다가 완전한 협착 후 빠르게 상태가 악화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겠다. 뇌졸중 후 뇌전증의 증상으로 뇌전증지속증이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어쩌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 뇌전증 발작이 발생하였지만 실어증 때문에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6.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1882‑1945)

프랭클린 루즈벨트(이하 루즈벨트)는 미국의 제32대 대통령으로서, 임기 동안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미국 역사에서 유일하게 4선에 성공하여 재임 기간이 12년이었던 만큼 다수의 의사가 진료를 하였고, 대단한 애연가로 알려져 있다[30,31]. 하지만 어떠한 이유인지 루즈벨트에 대해서는 사망 후 부검을 시행하지 않았고, 그의 사망 후 의무기록도 어디론가 사라졌다[32]. 그래서 1921년에 소아마비 진단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음에도, 이마저도 근거가 부족한 측면이 있어 2000년 이후에는 Guillain-Barre syndrome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되는 등 아직도 그의 병력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30]. 루즈벨트를 가장 오랫동안 지켜봤던 Ross McIntire (1889-1959, 당시 해군 중장)라는 이비인후과 의사는 언제나 루즈벨트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음”이라고 말해왔었기에, 루즈벨트의 정확한 건강 상태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루즈벨트는 말년인 1944년 3월 27일이 되어서 Howard Bruenn이라는 심장내과 의사(당시 해군 소령)를 만나게 되었고, Bruenn이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기록은 1970년이 되어서야 공개되었다: 그는 루즈벨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매우 피곤해 보였고 얼굴이 회색이었다. 움직일 때마다 심하게 숨이 차올랐다.”라고 표현하였다. 그 즈음에 루즈벨트는 최소 약 7년간 고혈압을 앓아온 상태였으며, 수축기 혈압은 220 mmHg를 넘어가고 있었다[32]. 당시의 의학적 지견에서는 고혈압이 중요한 질병으로 인식되기 전이었으므로, 이러한 고혈압 상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33]. 대신에 Bruenn은 루즈벨트에게 심부전을 진단하고 디지털리스(digitalis)를 처방하면서 저염식, 체중 감량을 추천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으나, 루즈벨트는 여전히 담배를 하루에 두 갑씩 피우고 햄을 즐겨먹었다[30,31]. 1944년 4선을 위한 선거 직전에 루즈벨트를 진찰한 Frank Lahey라는 외과 의사의 비망록이 2007년에 공개되었는데, 그 내용에 따르면 이미 루즈벨트는 심부전과 관상동맥질환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였다[31].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기 때문인지, 혹은 의사로서 환자 비밀 유지의 의무 때문이었는지, 주치의들은 루즈벨트의 건강 상태에 이상이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그 해에 루즈벨트는 4선에 성공하였다. 1944년 7월부터 복수의 사람들이 루즈벨트를 만나서 그의 이상한 증상을 인지하기 시작하였는데, 잠시동안 멍한 상태로 아무런 반응이 없는 motionless staring 증상을 공통적으로 진술하였다[34]. 구체적으로는 1945년 1월에 루즈벨트의 오랜 친구이자 상원의원인 Frank Maloney의 일화가 있다: “Maloney가 루즈벨트의 앞에 앉았을 때, 그는 상대를 쳐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의 눈은 이상한 눈빛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잠시의 정적이 흐른 후, Maloney는 루즈벨트가 방문객(Maloney)을 전혀 알아보지 못함을 알아챘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Maloney는 가슴에 성호경을 긋고 비서인 Watson에게 달려가서 대통령에게 뇌졸중이 발생한 것 같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Watson은 “걱정 마세요. 금방 괜찮아질 겁니다. 자주 있는 일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이 이야기를 듣고 Maloney가 대통령 집무실로 다시 돌아갔을 때, 루즈벨트는 평소처럼 크게 웃으며 인사하고는 활발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35]. 한편, 루즈벨트의 조절되지 않은 고혈압은 악화를 거듭하여 1945년 2월의 얄타회담 직전에는 260/150 mmHg를 기록하였고(Fig. 3), 결국 1945년 4월 12일에는 심한 두통을 호소한 후 의식을 잃었다. 그가 쓰러지고 나서 약 15분 후에 Bruenn이 기록한 혈압은 300/190 mmHg이었다[32]. 이상의 의사들의 기록과 목격자들의 증언을 종합할 때, 루즈벨트 역시 반복적인 뇌전증, 그중에서도 motionless staring이 주된 증상으로 나타나는 뇌전증을 앓았을 가능성이 높다. 뇌전증의 원인으로는 뇌혈관질환을 생각해볼 수 있겠으며, 조절되지 않은 고혈압과 심부전, 흡연이 상당히 작용하였을 것이다. 루즈벨트는 말년에 하루 60-90 mg의 페노바비탈(phenobarbital)을 복용하고 있었다[34]. 하지만 당시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대해서 의료진이 “마른 하늘에 날벼락(Came out of clear sky)” 등의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뇌병변 가능성에 대해서 주목하지 못하였고[36], 주치의들의 비망록에서조차 뇌전증에 대해서 고민한 흔적이 없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31], 페노바비탈은 뇌전증에 사용하였다기보다는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치른 대통령의 수면장애 또는 불안증상에 대해서 사용하였을 가능성을 먼저 생각하여야겠다.

고 찰

역사 속 인물들의 뇌전증 발작증상에 대해 논하면서 이들에 대한 근거를 의학적 관점으로 자세히 짚어보았다. 19세기 이전의 인물들에서는 기록이 부족하였는데, 특히 카이사르의 증상은 후세의 역사가가 기술한 전기문에 의존하고 희곡 등의 허구를 바탕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뇌전증의 가능성만 말할 수 있을 뿐, 근거가 미약하다. 나폴레옹의 증상은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강력히 의심할 수 있겠으나, 역시 의무기록 등의 객관적 근거가 부족하다. 19세기를 지나면서 근대 신경학의 발전과 더불어 의무기록이 존재하고, 특히 자세한 날짜가 표시된 편지들도 근거가 되어 도스토옙스키와 반 고흐의 뇌전증은 확실한 진단이라 볼 수 있겠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보다 더 세밀한 진단적 소견을 포함한 부검 등의 의무기록(혹은 비망록)이 있었기 때문에 레닌과 루즈벨트의 기록이 사라지거나 완전히 공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뇌전증의 진단뿐만 아니라 그 병인에 대해서도 비교적 정확히 추론할 수 있었다.
역사 속 뇌전증 환자들에 대하여 언급한 상호 심사 학술지(peer-reviewed journals)를 중심으로 하여 전기, 평전 등의 다양한 문헌을 조사하고 의학적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첫째, 인물들을 다루면서 의무기록의 유무에 따라 그 증상의 평가가 매우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당대의 의사들이 조금 더 많은 기록을 남겼더라면, 또는 더 자세한 병력이나 증상을 기록하였다면 지금 우리에게 더 큰 도움이 되어 더 정확한 진단을 추론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 뇌전증의 정의는 비유발성 발작이 간헐적으로 반복되는 임상 증후군이다. 뇌전증의 진단을 위해서 뇌파나 뇌영상검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기에, 뇌전증을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서는 의식장애나 발작이 발생한 때의 자세한 정황과 환자 및 목격자의 진술, 그리고 환자의 생활환경, 외상 유무, 생활습관, 직업 등에 대하여 포괄적으로 생각하는 넓은 시야가 필요하겠다. 우리는 발전된 현대 의학을 다루고 있지만, 여전히 의사에게는 환자와의 대화와 환자에 대한 진찰이 중요함을 되새겨야 하겠다.
아무쪼록 본고를 통하여 구체적인 뇌전증의 증상과 그 예시가 좀 더 자세히 알려지고, 궁극적으로는 뇌전증의 사회적 편견 해소에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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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Self Portrait with Bandaged Ear and Pipe. After being treated with potassium bromide, Van Gogh was discharged from the hospital on January 7, 1889, and painted two self-portraits of a bandaged ear: “Self Portrait with Bandaged Ear” and “Self Portrait with Bandaged Ear and Pipe”. The latter has become more widely accepted as one of Van Gogh’s authentic paintings[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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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
Lenin with his sister and duty doctor. This is one of the last photographs of Lenin, taken in May 1923. This shows his health condition had deteriorated[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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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3.
Prime Minister Winston Churchil, President Franklin Roosevelt, and Premier Joseph Stalin (from the left) at the Yalta Conference. At the Yalta conference from 4 to 11 February, 1945, the three nations (the United Kingdom,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were represented by the “Big three” leaders sitting together. Based on the available literature, Roosevelt would have already had epilepsy[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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